본문 바로가기
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34 : 거대 마시멜로, 곤포 사일리지

by 구루퉁 2021. 10. 8.

 어렸을 적 추석에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벼 수확이 끝난 논밭에 마시멜로처럼 동그랗고 하얀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그걸 보면 거대한 마시멜로가 생각이 났다. 뭐라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마시멜로라고 부르곤 했는데, 그것의 정체는 늘 궁금한 미지의 것이었다.

사진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3333838

 시골에 내려와서 보니 거대한 마시멜로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주변에서 알려준 것은 아니었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어 알게 되었다. 그것의 정체는 원형 볏짚이다. 정확한 명칭으로는 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라고 한다. 콤바인이 알곡들을 걷고 지나가면 뒤에 남는 볏짚들을 동그랗게 말아 비닐로 포장해둔 것이다. 왜 그런 일을 하는가. 축산 농가에서 소들의 사료로 사가기 때문이다. 거대한 마시멜로는 소들이 먹는 마시멜로다.

거대 마시멜로의 속에는 압축된 볏짚이 있다. photo by 구루퉁

 소들이 먹는 마시멜로는 하나에 6~7만 원 선에 거래된다고 한다. 무게는 대략 500kg가량. 과거엔 가을 바람에 방치시켜 반건조된 볏짚들로 포장을 했는데, 최근 들어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바로 포장하는 바람에 물먹은 볏짚, 생볏짚으로 인한 축산농가의 피해가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추수와 함께 바로 포장되는 경우 수분 함량이 60%이상이고 축산농가에서는 이를 바로 쓸 수 없어서 노랗게 볏짚이 될 때까지 건조를 시키면 원래 양보다 30%가량 줄어든다는 것이다.

 

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 거대 마시멜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동네에서 직접촬영)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문제는 축산농가 뿐이 아니다. 추수를 하는 과정에서 떨어지는 낙곡의 양이다. 농업이 현대화되기 이전에는 들판에 볏짚을 그대로 깔아놓고 이듬해 농사를 위한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철새들은 수백, 수천 년 동안 그런 농업 형태에 적응해 낙곡을 통해 우리나라의 겨울을 보냈다. 물론 철새들이 낙곡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풀씨나 보리싹, 곤충 보다 벼이삭 형태로 남은 낙곡들이 주요 에너지 공급원임은 분명하다.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80~100만 마리의 철새들, 겨울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립 생태원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천수만 간월호와 부암호 주변 농경지에서 추수 직후인 10월엔 철새 개체 수가 25만 마리 가량 관측이 되었지만 11월과 12월부터 철새 수가 격감하여 낙곡이 거의 없는 1월부터 3월 사이엔 4만 마리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국립 생태원은 철새들이 낙곡이 있는 곳을 찾아 멀리 떨어진 산지 등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천 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찾아오는 순천만,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의 아름다운 군무, 천수만, 시화호, 금강호, 철원 등지의 세계적인 탐조 명소들은 정서적, 문화적 풍요로움이다. 겨울 철새의 배설물은 다음 농사를 위한 훌륭한 거름이 된다.

 생물 다양성, 인간이 보존해야하는 것은 자신의 통장만이 아니다. 인간이 지켜야하는 것은 자신의 가족만이 아니다. 원형 곤포 사일리지에 들어가는 비닐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나는 소고기 섭취를 줄이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에 동참하고자 한다. 육식을 하지말자는 것이 아니다. 조금 줄이자는 것 뿐. 나는 공장식 축산산업에 반대하여 계란도 그 비싸다는 동물복지란을 먹고 있다. 이제 시골에서 마주치는 거대 마시멜로가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었으면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