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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드라마 : 유성화원 (꽃보다 남자 중국판)

by 구루퉁 2022. 4. 11.

숨어서 보는 명작 특집1
어떻게 서사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드라마 <유성화원>


영화 <우리들>과 <우리집>의 윤가은 감독은 최근 자신의 에세이집 [호호호 :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에서 자신의 은밀한(?) 취향을 진솔하게 드러냈다. 바로 그가 꼽는 인생 드라마 중 하나가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이며, 자신이 <펜트하우스>나 <결혼작사 이혼작곡> 같은 ‘막장’ 드라마의 애청자라는 것. 소위 말하는 ‘거장’들의 대단한 작품은 아니지만 자신의 취향을 솔직하게 터놓는 그를 보며 나도 나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er)를 꺼내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늘 작품은 2018년에 나온 중국 드라마 <유성화원>.
일본에서도(2005), 한국에서도(2009)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로 제작된 바가 있는 이 작품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만화가 연재된 시기가 1992년부터 2004년까지라고 하니, 실로 엄청난 시간차를 넘어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인 셈이다.

‘성격 나쁘고 재수 없지만 부잣집 도련님인 남주와 가난하지만 명랑쾌활한 여주의 우당탕탕 러브스토리’라는 문장으로 간단하게 요약이 가능한 이 드라마의 성공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배우들의 외모.

교내에서 ‘F4(Flower 4)’라 불리는 네 남자들의 저마다 다른 매력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큰 요인이다. 21세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유성화원>의 시대착오적인 연출과 서사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드라마에 과몰입하는 이유도 남자 주인공 ‘따오밍쓰’를 맡은 중국 배우 왕학체(王鹤棣)의 미모 때문이니까.

고슴도치 같은 요상한 머리를 하고도 미모에 타격을 받지 않는 그의 화려한 이목구비, 괴상한 패션도 찰떡 같이 소화해버리는 시원스러운 비율. 미친 외모에 홀려 49화를 몰아보고 나니 나의 일주일이 증발한 듯 사라져버렸다.

여자 주인공 ‘산차이’에게 눈물이 날 때는 눈물이 흐르지 않게 물구나무를 서라며 실제로 물구나무를 서 보이는(!) 서브남 ‘레이’부터 고등학교가 배경인 원작과 달리 대학교가 배경이라 더더욱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설정, 끝까지 본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대륙의 PPL, 멋들어진 호화저택이지만 세트장이 추운지 수시로 집안에서 입김이 나오는 장면이며 여성 인권을 열 걸음쯤 퇴보시키는 장면까지- 1화부터 49화까지 그야말로 ‘매회가 허들’이지만 어떻게 서사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얼굴이 개연성인 왕학체의 눈부신 영상을 무려 49화 분량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에게 이 드라마의 가치는 충분하다.

스토리는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본디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티격태격하면서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주변의 반대에 부딪힐수록 불타오르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설렘과 달콤함, 연애에 대한 환상을 선사한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드라마를 계속 보게 하는 힘도 그 익숙함과 뻔함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나름 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조차 한 번 보라고 농담으로라도 권하지 못하는 드라마 <유성화원>을 보기로 했다면, 이 터널을 먼저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41화까지는 꾹 참고 보라고 말하고 싶다.(드라마는 49화까지다.)

왕학체의 미모, 착장, 대사, 연기, 로케이션, 연출까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해당 화는 앞선 모든 서사가 이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고 절절하다.(이렇게 찍을 수 있었으면서 이때까지 왜 그따위로 찍었느냐고 드잡이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잠시 내려두자.)

여기서 끝났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말잇못) <왕좌의 게임> 팬들이 마지막 시즌을 보지 말라고 권하듯, 내 마음 속 <유성화원>은 41화까지다.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면, 전세계의 팬들이 레전드화로 손꼽는 41화까지는 오그라드는 손과 발을 펴며 꿋꿋이 가보자.

외모지상주의와 루키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여전히 믿지만 한편으로 속절없이 잘 생긴 얼굴에 빠져드는 나.
허광한으로 중국어 공부에 입문해 왕학체로 박차를 가하는 나.
아시안 얼굴의 미래는 중국에 있다고 믿는 나.
쓰고 나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얼빠(특정 유명인을 좋아할 때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외모만을 보고 좋아하는 팬을 이르는 말)’이며 통속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는 나를 이제는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유성화원>은 나의 영원한 길티 플레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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