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1화
- 어느날 갑자기 내마음이 말했다
'더 이상 안 되겠어.'
목까지 차올랐던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은 경기도에서 4년, 서울에서 3년을 살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재택근무자로 막 사회생활의 첫 걸음을 뗀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나 기숙사와 원룸, 자취촌을 전전하던 나는 대학교에서 만나 5년간 교제한 연인과 2016년 4월 결혼식을 올리고 동작구의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이 탁 트인 한강을 가로지를 때마다 내가 정말 서울에 왔구나, 감동했던 것도 다 지난 일. 어느 새 나는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보이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서울생활을 동경해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서울에 내 한 몸 누일 몇 평 남짓한 공간을 마련한 뒤로 나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나는 길거리마다 요란스럽게 펼쳐진 간판들이, 차디찬 거리에 좌판을 내어놓고 물건을 파는 노인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타인들이 즐비한 서울이라는 도시가 살아보겠다고 악을 쓰는 들짐승 같아 자주 두렵고, 때때로 환멸스러웠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시절 틈만 나면 항공권을 검색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구름 아래로 보이는 잿빛도시의 화려한 불빛을 찬란한 무덤이라 생각하며 나는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나 이곳을 갈망했으면서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던 곳, 나를 재촉하던 '초조한 도시', 무엇이든 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나날들. 내게 서울에서의 삶은 끝나지 않는 백야였다.
나를 소진하고 의미 없는 만남에 지쳐가던 내 안에서 어느 날 툭, '더 이상 안 되겠어.' 한숨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시험을 치느라, 자격증을 따느라, 대학을 졸업하느라, 직장을 구하느라…… 수많은 이유에 묻혀 그간 내 속에서 맴돌았던 진짜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시절부터 서울이 아닌 시골에서 살고 싶다던 남편의 영향일까 싶은 마음도 잠시, 미우나 고우나 서울에서 살겠다는 생각이 한 번 허물어지자 구체적인 계획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남편도 집에서 컴퓨터로 일하는 재택근무자이기에 사는 곳을 옮기더라도 돈벌이에는 당분간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게다가 영영 시골에 살겠다는 게 아니라 시골에서의 삶을 한 번 경험해보겠다는 취지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서울에 세를 놓고 정 못살겠으면 2년만 딱 버티고 올라오자, 말이 안 통하는 외국도 아니고 한국인데 2년을 못 살까. 덜컥 용기가 났다.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조심스레 운을 뗐더니 웬걸. 남편은 쌍수를 들고 벌써 시골에 봐둔 매물이 있다며 신이 났다.
알고 보니 진즉에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남편은 틈날 때마다 인터넷으로 시골집의 시세나 매물을 알아보며 내 마음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남편이 연애 초부터 결혼 얘기를 줄기차게 꺼내더니 코웃음 치던 나를 결국 결혼식장까지 데려간 계획성 철저한 남자였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몇 년 새 유난히 시골집이나 시골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했더니 이런 큰 그림이 있었을 줄이야, 남편의 용의주도함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남편이 몇 달에 걸쳐 꼼꼼히 시골집을 알아봐둔 덕분에 우리의 시골이주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날이 밝는 대로 충북에 위치한 작은 텃밭 딸린 주택을 실제로 보러가기로 했다. 그날 나는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를 뒤늦게 고민하며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본문 중의 표현 '초조한 도시'는 이영준 교수님의 책 『초조한 도시』의 제목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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