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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06 잘 있어, 서울!

by 구루퉁 2023. 1. 12.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6화
- 잘 있어, 서울!

숱하게 많은 낮들과 수없이 지샜던 밤들이 이곳에 있었다.

  시골집의 주소를 날씨 앱에 등록해두고 그곳의 햇살, 바람, 비를 상상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나라는 사람이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곳에서보다 조금 덜 조급한 나이기를, 이곳에서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나이기를 바라며 봄비가 한창일 그곳을 떠올렸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새삼스레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 곳곳을 쏘다녔다. 언제 한 번 보자는 말로 미뤄둔 약속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털어낼 수 있게 되어 마음도 한결 가뿐했다.     

  결혼 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산 기간보다 더 오래 서울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깜짝 놀라면서도 언젠가는 우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버릇처럼 내년에는 어디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나였으니 그나마 국내로 이사한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볼 수 있겠다며 다행스럽게 여겼다. 내가 서울에 정 붙이고 산 이유가 딱 하나, 사람이었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가까이 살았으나 좀처럼 만날 시간이 없었던 지인들도 이사 소식을 듣고 기꺼이 시간을 내주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내게 서울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남겨주고자 한 덕에 나는 서울에 살던 3년 여간 미처 알지 못했던 서울의 보물 같은 장소들을 잔뜩 알게 되었다.     

  얄궂게도 서울에 사는 동안 삶에 치여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울을 떠나기로 했을 때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십 대 시절부터 동경해 마지않았지만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았던 도시, 내게 서울은 한 발짝 떨어졌을 때 가장 눈부신 도시였다.  

  그렇게 이사 바로 전날까지 친구를 만나고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마지막이 되면 처음이 생각난다고 했던가,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서울에서의 나날을 되돌아보았다.     

 

  숱하게 많은 낮들과 수없이 지샜던 밤들이 이곳에 있었다.

  여전히 눈 감으면 서울의 어느 거리를 걷는 내 모습이 선연했다.

 

  울며 웃던 날들, 만나고 헤어졌던 인연들, 정처 없이 헤맸던 시간들.

  어렸던 나와 여전히 어린 나. 좋은 기억만 새기고 이제 잠시 안녕.     

 

  내가 걸었던 길만이 내가 된다고 믿는 나라서 숱하게 많은 길들을 홀로, 또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다. 추억이 많은 길을 지날 때면 스물셋의 내가 보이고, 스물넷의 내가 들렸다. 내가 너무도 많은 도시, 내 청춘을 간직한 도시. 그 도시에서의 마지막 밤, 이사 네 시간을 앞둔 새벽까지 나는 거리 곳곳에 새겨진 기억들을 더듬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 떼니 이사를 시작하기로 한 아침 6시 30분. 칼 같이 시간을 맞추어 도착한 이사 업체 직원들이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후추와 율무를 차 안에 넣고 짐들이 실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살면서 몇 번의 이사를 경험했지만, 대학생 시절에 살던 방에는 주로 가구며 가전제품이 옵션으로 딸려 있어서 대대적인 포장이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침대부터 세탁기, 냉장고까지 집 안의 모든 물건을 옮겨 싣는 이사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셈이었다. 막연히 이 물건들을 모두 탑차에 싣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커다란 물건을 능숙하게 밀고 당겨 사다리차에 올리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니 그 솜씨가 차라리 기예에 가까웠다.     

  생각보다 내가 나설 일은 별로 없어서 이사가 진행되는 짬짬이 강아지들을 옥상에 데려가 저 멀리 63 빌딩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3시간쯤 흘렀을까, 작은 탑차 두 대에 짐들을 거의 다 옮겨 싣고 나니 에어컨이 들어갈 자리가 조금 애매하다는 결론이 났다. 견적을 낼 때부터 에어컨을 실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어서 일단 실어보고 자리가 나면 가져가자고 생각했었는데 자리가 빠듯했던 것이다.     

  탑차를 추가로 불러 싣자면 실을 수도 있었지만, 이사 가는 집에는 에어컨 자리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에어컨 자리가 따로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낙관적인 마음으로 과감하게 에어컨을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빌딩 숲이 아닌 진짜 숲이 곳곳에 있는 시골이니 도시만큼 덥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낙관도 결정에 힘을 실었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다 빠지고 에어컨 한 대만 덩그러니 남았다. 텅 빈 집을 보니 정말 떠나긴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며 출근시간이 지나 한적해진 시간을 틈타 우리는 서울을 빠져나왔다. 점심을 먹고 시골집에서 이삿짐 차와 합류해 짐을 내렸다.     

  집 앞까지 들어오는 길목이 좁았지만, 다행히 로드뷰로 미리 이 상황을 예상해 작은 탑차 두 대로 이사를 한 덕에 현관 바로 앞에 차를 댈 수 있었다. 대문을 열어 마당 안으로 차를 들일 수 있는 형태라 짐을 옮기기가 한결 수월했다.     

  가구를 내려 위치를 잡는 동안 강아지들을 옥상에 데려다 두고 입구를 막아 내려오지 못하게 해 두었다. 강아지들이 내내 옥상을 불안한 듯 오가서 틈틈이 내가 옥상에 머물며 강아지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아침 6시 30분부터 시작한 이사가 저녁 6시까지 장장 열 두 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이사업체 직원들이 돌아간 뒤에도 정리할 잔짐이 한 무더기 쌓여있었다. 이 짐을 다 풀 때쯤이면 또다시 이사 갈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골의 밤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시골집에서의 첫날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온종일 분주하게 움직이는 통에 강아지들도 많이 불안했을 하루. 낯선 곳에 적응하느라 후추도 피곤했는지 문지방에 머리를 베고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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