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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04 그 집 이야기

by 구루퉁 2023. 1. 10.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4화
- 그 집 이야기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부동산에서 등기로 계약서를 받고 집주인과 만나 작성한 뒤 다시 부동산으로 보내기로 했다. 부동산 계약 절차가 으레 그러하듯 서로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며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상상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집주인은 이 집이 흘러온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이 집의 주인이 된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됐다. 집주인이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그곳에는 아들을 서울에, 딸을 부산에 둔 한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서울과 부산, 두 곳의 딱 중간에 위치한 이 집을 사들여 아들 집과 딸 집을 오가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집을 내놓았고 그때 이 동네가 고향이었던 지금의 주인이 우연히 이 집과 인연이 닿은 것이었다. 유년을 내내 고향에서 보내다 젊은 시절 상경해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집주인의 눈빛에서 고향에 대한 애정이 한껏 묻어났다.     

  예전 집주인 아주머니는 정원을 특히 공들여 가꾸셨는데 집 주위로 심긴 나무며 꽃, 잘 정돈된 잔디가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집처럼 예뻤다고 한다. 집주인은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보자마자 이 집을 사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집을 산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아주머니는 망설이시며 어찌할 바를 모르셨단다.    

  집에 정이 들어 팔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아주머니에게 집주인은 꼭 내게 집을 팔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해 어렵사리 계약을 할 수 있었고 나중에 들어가 살기 전까지 집을 비워둘 수 없어 잠시 임대를 하고 있다며 집을 전세로 내놓은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놓았다.     

  딱히 돈 때문에 임대를 한다기보다 집을 오래 비워두면 상하기 마련이라 임대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집 계약은 전세도 월세도 가능했는데 두 방법 모두 집의 상태나 위치, 마을 분위기에 비해 정말 저렴한 편이었다. 주변의 시세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절대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금액이었고 서울에 비하자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꽃샘추위가 옷깃으로 스미는 겨울의 끝자락, 종이컵에 탄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 들어가 살 집의 내력에 귀를 기울였다. 전에는 근처 고등학교에서 일하던 선생님이 3년여간 그 집에서 살았고 그다음에 세를 드는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그 집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집에 살다 갔구나. 우리도 이 집 이야기의 한 장을 수놓을 주인공이 되겠구나. 이 집의 이야기,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집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대학시절 몇 번의 자취를 하고 신혼집을 구하면서 계약서를 두고 집주인과 마주한 적은 여러 번이었으나 내가 들어갈 살 집이 어떤 집이고, 이 집에 나 이전에 누가 살았으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사실 내가 살게 될 집에 어떤 사연이 있고 어떤 사람이 살다 갔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명에 어떤 의미가 있고 역 이름이 왜 그런지에 대해는 종종 궁금증을 가졌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이다. 뒤늦게 내가 스쳤던 그 많은 집에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당연하게 여겼던 집이라는 공간이 새삼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느껴졌다.     

  우리 역시 이 집의 입장에서는 한 때 스쳐가는 객일 테지만, 이 집 이야기의 한 단락을 어떻게 써 내려갈지는 온전히 우리 몫이었다. 우리 부부의 방식대로 이 집에서 꾸려갈 새로운 일상을 상상하자 가슴이 뛰었다. 도시에서 사는 내내 느껴본 일 없던 낯선 설렘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입주할 날짜를 협의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집 이야기를 되새겼다. 2년이 지나면 그 집 이야기에 우리 부부의 이야기도 덧붙여질 것이었다. 후에 옆집 할머니께 들어보니 더 옛날에 이 집에는 택시기사를 했던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50년을 한 곳에서 사신 할머니의 기억 덕에 내 마음속 집 이야기에 한 페이지가 덧붙여졌다.     

 

후추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자 가만히 앉아 꼬리를 흔들었다. 거기가 어디든 함께라면 문제없어,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러 이야기가 한데 섞여 이 집의 이야기가, 한 마을의 역사가 되는 것을 실감하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길게 집을 비운 우리를 후추와 율무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품속으로 파고드는 따스함을 느끼며 나는 후추와 율무에게 기쁜 소식을 속삭였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기로에 설 때마다 끊임없이 선택하며 나아왔다.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으니까. 인생은 망하거나 끝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니까*. 이번에도 우리는 해보지 않고 그리는 일보다 후회하더라도 해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골살이가 ‘어쩌다’ 시작되었다.

 


*해당 표현은 은유 작가의 글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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