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07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by 구루퉁 2023. 1. 13.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7화
-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서울로부터 208.15km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보다 벚꽃이 우선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봄이면 열일 제쳐두고 벚꽃부터 봐야 직성이 풀렸다. 대학 시절, ‘중간고사’라는 웃지 못할 꽃말에도 벚꽃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하면 했지, 그러지 않고서야 마음이 들떠 좀처럼 앉아있지 못하는 나였다. 4월을 맞기 위해 한 해를 사는 사람처럼 봄을 기다리는 것이 내게는 낙이었다.
짐 정리는 잠시 밀어 두고 꽃놀이를 나섰다.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벚꽃 때문에 4월을 손꼽아 기다린 나를 아는 남편과 강아지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봄빛 완연한 계절, 골목 구석구석 봄이 흠씬 번지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초입 나무에도 벚꽃이 가득했다. 안녕 안녕 손을 흔드는 벚나무 가지를 보며 하롱하롱 내 맘도 따라 흔들렸다.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길을 걸었다. 길 한쪽으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활짝 핀 벚꽃나무 뒤로 탁 트인 강변 풍경이 펼쳐졌다. 눈앞을 가로막는 고층건물 하나 없이 나무와 강, 능선과 하늘이 끝없이 이어지는 광경에 지병처럼 앓았던 이유 모를 불안이 봄볕에 눈 녹듯 사라졌다.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길을 걸었다. 끊임없이 나의 쓸모를 되묻던 서울과 달리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나에 관해 묻지 않았다. 사람의 손이 닿은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은 이곳에서는 꽃도 나도 강아지도 그저 자연의 일부에 불과했다.
내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감각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맞는 것도, 틀린 것도 없는 세계에서 나는 나 자체로 넘침이나 모자람 없이 완전했다. 공연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곳에는 빈자리가 넘쳐났다. 들판은 무심하게 툭, 내버려둔 자리 한편을 내게 내어주었다. 나를 둘러싼 강물이, 나무가, 새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있고 싶으면 있고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나면 된다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한 몸 겨우 쉴 공간을 마련하고도 초조했던 도시의 날들, 그곳으로부터 200여 킬로미터 떨어져서야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은 이러한 풍경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아니었을까.

지도를 들고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어 길을 헤매는 곳이 아니라 애써 고개를 들지 않아도 내가 갈 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잠시 헤매더라도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곳.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은 이러한 풍경의 일부로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아니었을까.


온 세상에 우리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벚꽃 길을 걸으며 나는 더 없는 평안을 느꼈다.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숲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평안이었다. 아무도 없는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무릎에 자리를 잡은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빠르게 오르내리는 털북숭이들의 등과 입 밖으로 내민 분홍 혀 위로 벚꽃비가 떨어졌다.
챙겨 온 만화책을 한가롭게 들추고 벚꽃 사이로 새어든 하늘을 보며 한껏 여유를 만끽했다. 봄에 만나 봄에 결혼한 우리였다. 이렇게 벚꽃 나무 아래 앉아있으니 새삼스레 연애 때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데이트 기분도 나서 오늘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 같은 건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강아지들도 신이 난 것 같아 뿌듯해하던 그때, 율무의 하얀 털 위로 듬성듬성 까만 먼지가 내려앉은 것이 보였다. 대수롭지 않게 털어내려다 먼지처럼 군데군데 묻어난 것이 먼지가 아니라 진드기라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보니 후추의 털 사이사이에도 진드기가 숨어있었다. 여유는 이걸로 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진드기를 빗으로 긁어보았지만 진드기는 생각보다 단단히 붙어있었다. 떼어내려 할수록 진드기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급히 시내의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외부 구충을 해주었다. 도시와 다르게 시골에는 수풀이 우거진 곳이 많아 주기적인 외부 구충을 하지 않으면 진드기에 물려 강아지가 죽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서울에서 내부 구충을 한 달에 한 번 정도 해주기는 했지만, 외부 구충은 한 달에 한 번 해주지 않아도 진드기를 달고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시골에서 후추, 율무와 함께 살려면 강아지들에게도 시골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다. 시골에서의 이튿날, 봄의 첫 자락에서 우리는 자연과 가까이 사는 일에는 그만한 수고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진드기는 새발의 피였을 뿐, 머지않아 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반응형

'시골살이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 멀리서 보면 잡초  (3) 2023.01.16
08 다리 많은 친구들  (5) 2023.01.14
06 잘 있어, 서울!  (1) 2023.01.12
05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0) 2023.01.11
04 그 집 이야기  (1) 2023.01.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