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09 멀리서 보면 잡초

by 구루퉁 2023. 1. 16.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9화
- 멀리서 보면 잡초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풀 앉은 자리마다 삶이었다

  우리의 텃밭 정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쓰지 않던 몸을 쓰느라 삭신은 여전히 쑤셨지만 며칠간 짬짬이 풀을 뽑다 보니 텃밭을 뒤덮은 잡초들의 생김새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텃밭을 채운 풀들은 생김새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졌다. 잎이 길고 납작한 풀이 있는가 하면, 잎이 동그랗고 넓은 풀도 있고, 하트 모양의 잎이 여러 개 더해진 모양의 풀도 있었다. 이 세 가지 모양의 풀이 우리 텃밭에 가장 많았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모두 다 한통속 같았던 풀들을 어느 순간 조금씩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잡초라는 것은 다만 멀리서 본 우리의 시선일 뿐, 여기 이 흙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풀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들여다보면 풀 하나하나 온전히 같은 것이 없었고, 정해진 삶의 방식도 없었다. 비슷한 모양이라도 어떤 풀은 돌 틈에서, 어떤 풀은 양지바른 밭 한가운데에서 자라고 있었고 수직으로 자라난 풀이 있는가 하면 빛의 방향을 따라 비스듬하게 자란 풀도 있었다. 거기에 옳고 그름은 없었다. 풀들은 그저 최선을 다해 존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멀리서 볼 때 잡초였으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풀 앉은 자리마다 삶이었다.

  좋은 조건을 타고난 풀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리 잡은 곳에서 최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풀들을 보니 사람의 삶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싶었다. 올곧게 자라야만 풀이되는 것이 아니듯 남들과 똑같이 살아야만 삶일리 없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곳에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면 그것이 내 삶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 외부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그것을 내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그간 나는 늘 잘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잣대를 품고 살았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세상의 기준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한 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가정을 꾸리는 것’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것은 잘 사는 삶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 삶은 언제나 미완의 삶이었고 어딘가 부족한 삶,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수단인 삶, 끊임없이 다음을 준비하는 삶이어야 했다.     

  그렇게 내 삶 속에서 나는 스쳐가는 바람이었고 어느 한 곳 온전히 머물지 못한 손님이었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떠밀리듯 살았던’ 나날들. 그 속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은 때때로 쓸 데 없며 가로막혔고 대학 입학 후로, 졸업 후로, 취직 후로 끊임없이 유예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선 바로 이 자리를 부정한 채 내일을 꿈꾸며 산다 한들 그 삶이 행복할 리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불안을 습관처럼 달고 살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더 잘해야 한다 끝없이 쥐어짜는 삶 속에서 불행했다. 당시에는 내가 불행한 줄도 몰랐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내 삶을 바라보니 그간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힘겨워했다.     

  그걸 알게 된 이상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좋은 삶, 잘 사는 삶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내가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후회도 책임도 온전히 내 몫일 터였다. 내 욕망을 무시하고 타인의 말에 순종해도 내 욕망은 결코 나를 잊지 않는 것’이므, 오히려 내가 무시했던 나의 욕망은 어느 순간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지금까지의 거짓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야 말 것’므로.*     

  남편과 나란히 앉아 풀을 뽑으며 여기, 시골로 내려온 것이 내 욕망에 충실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돌투성이의 험한 길일지라도 지금, 여기, 내가 선택한 이 자리에서 나는 나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을지라도 상관없다. 누군가 실패한 삶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멋들어진 한 단어로 완벽하게 정의되지 않아도, 나는 나 스스로 온전히 만족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유채꽃 냄새를 맡는 후추와 율무. 멀리서 보면 잡초 무성한 텃밭도 앉아서 보면 꽃밭이었다.

 

   문득, 남편이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뿌리 쪽에 새끼손가락만 한 작은 무가 달린 유채꽃이었다. 무 인 줄도 모르고 뽑았다고 둘이 한참을 웃다가 유리병에 꽂아보니 작은 꽃다발처럼 앙증맞았다.      

  식탁 한편 꽃병에 무심한 듯 툭, 꽂힌 노란 꽃 한 줄기에도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앞으로 사는 내내 나는 유채꽃을 보면 텃밭을 갈다가 남편이 나에게 건넨 오늘의 이 꽃을 떠올릴지 몰랐다.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선물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존재했다.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놓았다고 하던가. 돌투성이 험난한 길이라도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마주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 길을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갈 수 있어 다행이라고,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직 채 피지 않은 유채꽃망울이 되도록 천천히 피어 오래도록 이 기분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랐다.

 

* 해당 표현은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