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8화
- 다리 많은 친구들
다리 다섯 이상 출입금지
시골에서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 없이 햇살이 방 안으로 들면 하루를 시작해 장을 봐온 재료들로 간단히 점심을 해 먹고 짐을 풀다가, 벚꽃을 보러 갔다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꿔보려고 틈틈이 밭에 잡초도 뽑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서 텃밭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기본적인 농기구 몇 개를 갖추고 무작정 잡초를 뽑았는데 농사일에 요령이 없는 우리는 호미, 낫, 네기, 삽 등 각종 기구를 이용해 온갖 퍼포먼스를 벌였다.
쪼그려 앉아 호미나 낫으로 잡초를 베어내다보면 금세 손목이 아파왔고, 삽으로 땅을 퍼내다 보면 발목이 시큰거렸다. 빗 모양의 머리가 달려있는 기다란 네기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리는 내 모습에 깔깔 웃다가 힘을 다 소진한 우리는 금방 지쳐 나가떨어졌다.
잡초를 뽑다 보니 잡초가 어떻게 끈질김의 대명사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뽑아도 뽑아도 다음날이 되면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잡초가 자라 있었고, 땅을 파내도 파내도 또 다른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잡초를 뽑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이었고, 시작은 있을지언정 끝은 없는 고행이었다. 텃밭 가꾸기의 푸른 꿈을 꾸는 우리에게 잡초라는 진입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우리의 미숙한 손놀림을 비웃듯 잡초는 돌아서면 자라났고 나는 잡초를 뽑는 악몽에 시달리며 근육통에 잠을 깼다. 멋모르고 텃밭의 세계에 입문해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잡초와 씨름하다 보니 초록색이라면 이제 징글징글했다. 그래도 온몸으로 시행착오를 겪은 터라 제법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철저한 분업 시스템을 도입해 남편이 빗처럼 생긴 네기로 밭을 들쑤셔놓으면 내가 그 자리를 호미로 솎아내는 방식으로 밭을 조금씩 넓혀갔다. 점차 초록의 영역이 줄어들고 흙의 면적이 늘어날 때마다 우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밭에서는 정말 별의별 것이 다 나왔다. 아주 오래된 병뚜껑에서부터 자잘한 뼛조각,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들은 물론, 싹이 튼 도토리,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 지렁이, 달팽이집까지 다양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호미질을 한 번 할 때마다 이번에는 또 뭐가 나올까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다.
가장 최선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고 가장 최악은 다리 많은 벌레가 나오는 것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방치된 밭에는 지네가 많았다. 대부분 크기가 작았지만 지네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정신을 놓아버렸고 지네 보고 놀란 가슴 지렁이 보고 놀라느라 작업시간은 줄어만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간 밭에서만 마주쳤던 ‘다리 많은 친구’를 집 안에서 마주치고 만 것이다. 옆집 할머니께서 주신 시금치를 맛있게 먹어보겠다고 닭가슴살을 구워 토스트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남편을 따라 참치 토스트를 먹었다면 그날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냉동실에 쌓인 닭가슴살을 없애겠다는 일념으로 아무 생각 없이 구운 닭고기는 그간 사람이 살지 않던 이 집으로 그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온 집안에 닭 살코기 냄새가 배도록 고기를 익혀 맛있게 토스트를 먹은 뒤 설거지를 하려다 밭과 가까이 잇닿은 주방에서 나는 보고 말았다. 다리 많은 친구 하나가 분주히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내 비명을 들은 남편이 전기 파리채를 휘둘러 친구를 저승으로 쫓아주었으나 집 안에서 한 번 마주치자 그 후유증이 꽤 심각했다.
하지만 일단은, 대책이 시급했다.
오래된 집이라 집 안의 모든 틈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고, 약국에서 명반을 사서 뿌려보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약국 아저씨는 지네에 물리면 비교적 큰 병원이 많은 김천시가 아니라 지네 물리는 사람이 종종 있어 약이 구비되어 있는 영동군의 작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친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날 밤 작업실로 쓰는 방에서 한 번, 현관 쪽에서 또 한 번 다리 많은 친구를 만난 후에 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시골살이의 위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잔뜩 예민해진 나는 침대 주변으로 모기장을 치기로 결심했고, 가정의 평화를 위협받아 분노한 남편은 급한 대로 강력한 바퀴벌레 약을 곳곳에 둘러친 뒤 독한 벌레를 쫓는데 쓴다는 ‘판*스’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여러 가지 조치를 한 후에도 나는 행여 강아지들이 다리 많은 친구와 악수라도 할까 걱정이 되었다. 다리 많은 친구들이 닭고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로 들어 알고 있었는데 나는 이제 평생 그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부로 우리 집에서 닭고기 조리는 엄격히 금지되었다.
인터넷에는 다리 많은 친구들을 만난 뒤 혼비백산한 많은 사람들의 수기와 그들을 쫓기 위한 온갖 요법이 넘쳐났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오를 한다고 했지만, 그 뒤로도 집 안과 밖에서 간간이 출몰하는 돈벌레와 지네로 인해 우리 삶의 질은 점점 낮아졌다. 집 밖이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으니 제발 집 안으로만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그들과 우리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다리 다섯 이상 집안 출입금지’ 협정을 맺고픈 마음이 절실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여기 이 공간이 어떻게 온전히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저들에겐 저들 삶의 방식이 있을 뿐 해롭다거나 싫다거나 징그럽다거나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인데, 어쩌면 잡초를 뽑는다고 밭을 들쑤시며 우리가 그들의 공간을 먼저 침범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직 공존은 불가능했다. 예전에 시골에 사시는 한 선생님께서는 천장에서 지네가 떨어져도 그러려니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기엔 수행이 한참 부족했다. 며칠 뒤 택배로 도착한 판*스를 남편이 집 주위 구석구석에 뿌린 뒤에야 다리 많은 친구들을 집안에서 마주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간간이 창틀이나 문 옆에서 그들을 마주치더라도 이미 기력을 모두 쇠한 뒤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런저런 경험 끝에 나는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밭이나 산과 인접한 집으로 시골살이를 떠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주에 앞서 판*스를 집 주위에 뿌리고, 집 안에서는 절대 닭 요리를 해 먹지 말도록 하자. 주기적으로 판*스와 바퀴벌레 약으로 방역을 해주면 효과는 더욱 확실하다.
이것이야 말로 다리 다섯 이상인 친구들을 집안으로 초대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자, 시골생활의 제1수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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