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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27 축제의 계절

by 구루퉁 2023. 2. 7.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7화
- 축제의 계절

포도 그리고 와인


와인잔을 사면 와인축제장 모든 부스의 와인을 시음해볼 수 있는 와인축제. 한번쯤 와 볼만 한 영동의 축제.


  몇 년 새 지역 축제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지방의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부터 조형물이나 조명시설을 설치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까지 그야말로 지금은 여러 가지 축제가 난립하는 '축제 전국시대'라 할만하다.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축제가 생긴 이유는 자명하다.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 그 지역의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통해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 내가 사는 영동군도 예외는 아니다.

  영동군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큰 축제가 열린다. 8월 말에 열리는 '포도축제'와 9월에서 10월 중에 열리는 '와인축제'. 두 축제 모두 영동군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포도를 테마로 한 축제다. 국악축제와 곶감축제도 있지만 관심과 열기 면에서 포도/와인 축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무튼 우리가 영동군에 와서 처음으로 가 본 지역축제는 포도 축제였다. 내가 포도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포도축제는 영동읍에 있는 영동체육관 앞 넓은 공터에서 열렸는데, 평소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곳이 축제날이 되자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주차를 하고 포도축제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행사장에는 영동군의 각 면에서 출하한 포도의 맛을 직접 볼 수 있는 부스와 포도 관련 제품들을 파는 부스, '샤인 머스캣(당도가 높은 청포도)'과 같은 특수한 품종의 포도를 파는 부스, 그 밖에 복숭아나 블루베리 등을 파는 부스까지 다양한 부스들이 늘어서있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달큼한 포도향이 느껴졌다.

  한 바퀴를 쭉 돌면서 영동군 각 면의 포도 맛을 모두 보았다. 그중에 내가 사는 황간면도 있어서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2017년에는 비가 많이 와서 포도가 달지 않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한 맛이었다. 이쯤에서 달달한 포도를 고르는 팁을 적어보자면, 포도는 단맛이 위에서부터 내려오기 때문에 가장 먼 꼬리 쪽의 포도알이 실하고 달면 전반적으로 포도가 달다고 한다. 색이 짙고 알이 큰 포도가 맛있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집 앞의 농가에서 포도를 사 먹고 있어서 따로 포도를 사지는 않았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포도를 여러 박스 사 가기도 했고, 행사장 옆에 마련된 택배 부스에서 이곳저곳으로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유통과정을 대폭 줄인 덕에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리라. 당시 5kg 포도가 이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었으니 확실히 싼 가격이었다.

  축제에서는 일부 포도를 가져갈 수 있는 포도 따기 체험이나 비닐 신발을 신고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일 포도를 직접 밟아보는 체험, 물에 빠진 포도를 건져 올리는 체험 등 포도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포도 따기 체험은 우리 마을 바로 앞의 포도밭에서 열려서 축제기간 내내 우리는 셔틀을 타고 와 포도를 따고 일부를 가져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나와 남편은 멀찍이서 아이들이 이런저런 체험들을 즐기는 것을 지켜보며, '와, 이렇게 더운데 아이들은 힘이 넘치는구나'하고 생각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우리나라 지역 축제에 빠질 수 없는 노래자랑과 각설이패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노인 인구가 압도적인 영동군의 인구비율로 미루어 짐작컨대 공연의 타깃은 우리가 아닌 어르신들이었다.

  아무튼 포도축제는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포도를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은 사람이 오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 하나, 그게 아니라면 즐길거리와 볼거리 면에서 다소 아쉬운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하긴 이름부터 포도축제니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오려나?)

  포도가 끝물에 이르고 감이 익어 무렵이 되자 와인축제가 열렸다. 마을 주민으로부터 포도축제는 그냥 그렇지만 와인축제에는 꼭 가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고민할 것도 없이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포도축제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인파였다.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행사장에서 꽤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행사장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와인축제 행사장 입구에서는 입장권을 대신하는 와인잔을 삼천 원에 판매하고 있었는데(물론 성인만 살 수 있다), 이 잔이 있으면 행사장 안에 있는 모든 와인 부스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는 와인잔을 씻을 수 있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와인을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함께 안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포도가 유명한 영동군은 몇 년 전에 군민들을 대상으로 영동 포도를 활용한 와인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영동에는 40여 곳에 달하는 와이너리가 이 고장에서 생산된 포도를 이용한 국산 와인을 만들고 있다. 축제에는 거의 대부분의 와인농가가 참여해 와인축제에 오면 와이너리를 한 곳 한 곳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 자리에서 자신의 와인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농가에서 직접 부스를 운영하니 다른 판매처를 통해서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살 수 있음은 물론이다.

  나와 남편은 모든 와이너리의 와인을 다 맛보겠다는 일념으로 축제장을 돌았다. 확실히 이렇게 각각 다른 와인을 먹어보니 맛의 차이가 조금씩 느껴졌다. 단맛이 강한 와인, 끝 맛이 쓴 와인, 향이 유독 진한 와인-취하는 줄도 모르고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나는 낮술의 즐거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행사장을 나서는 내 손에는 9900원이라는 가격(!)에 나온 아이스와인이 들려있었다. 단맛이 아주 강해 디저트 와인으로 주로 쓰이는 아이스 와인은 포도를 얼린 뒤 착즙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포도가 얼면 내부의 수분도 얼면서 과즙이 농축되어 풍미가 매우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운 만큼 보통 아이스 와인은 적은 양도 아주 비싼 가격에 나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차에 와인축제에서 값싸게 구할 수 있었다. 손에 들린 아이스 와인 한 병만으로도 마음이 알딸딸했다.

  조금씩이라도 40여 곳의 와이너리를 돌며 모든 와인을 맛봤기에 바로 차를 운전할 수 없었던 우리는 행사장 의자에 앉아 포도즙을 첨가해 만든 포도 김밥과 푸드트럭의 음식들을 먹었다.(군에서는 와인축제를 하면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음주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영동지역 곳곳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사람 구경도 하고 걷기도 하고 물도 마시고 이것저것 받아먹기도 하면서 우리는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이 지난 끝에 우리는 이쯤이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과연 와인축제는 사람들이 강력하게 추천할 만했다. 술을 즐기는 사람도,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단돈 삼천 원에 여러 가지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이득(?)이다. 나에게도 와인축제는 술을 먹을 수 있는 나이라면 한 번쯤 와보기를 권하고 싶은 축제였다.

  대부분의 문화적 혜택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광역시 중심으로 포진한 지금의 세태를 생각하면 지방 축제는 문화체험 기회를 늘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과도한 상업화와 부실한 프로그램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축제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 지역들이 그 지역에 맞는 콘텐츠와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으로 색다른 축제를 기획해 지역민도, 관람객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축제가 더욱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도 곧 포도축제, 이어서 와인축제가 열릴 것이다.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동시에 영동군에 사는 사람으로서 올해도 나는 두 축제를 기웃거릴 것이 분명하다.
  산책길에서 하루가 다르게 알알이 영글어가는 포도를 본다. 포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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