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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

51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

by 구루퉁 2023. 3. 7.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51화
-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이쯤에서 들어보는 남편 이야기


※ 2018.6.20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어쩌다 시골살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시골살이를 연재한지도 반년이 되었다.

  이쯤에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우리 부부는 2017년 4월에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있는 작은 농가주택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글 속에서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브런치에 연재되는 모든 이야기들은 한 해 전의 일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2018년 6월 현재를 살며 2017년 8월의 지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지금 한창 브런치에 나오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래에서 과거의 삶을 바라보며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시간의 간극이 글 쓰기를 수월하게 해주기도 했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우리를 기록할 수는 없다는 한계 또한 분명했다. 그렇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쓰자니 시간 속에서 서서히 변해온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그래서 나와 시골생활을 줄곧 함께 해오며 나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남편이 자기를 인터뷰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이것이 지금 이 순간의 시선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오기는 했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이야기해 본 일은 없었기에  우리의 시골살이 전반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인터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걱정 많고 겁도 많은 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남편에게 감사를 전한다. 사실 시골살이 자체가 남편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 글을 나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는 당신에게 보낸다.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사람, 내가 처음 본 남편은 그랬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눈에 비친 남편은 단순히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8년의 시간을 함께하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남편은 나와 가장 잘 맞는 친구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서로의 속마음에 대해서 안일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골살이에 대한 내 입장은 지난 반년 간 꾸준히 밝혀왔다. 이제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볼 차례다.

 


 

간단히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음..., 충청의 아들?(웃음) 그냥 귀촌 1년 차 건장한 서른세 살 남자- 이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렇다면 귀촌 1년 차 건장한 서른세 살 남자는 무엇을 꿈꾸시나요?

  일단 인생의 최종 목표는 집을 짓는 것입니다. 시골에 내 집을 지어서 내가 원하는 활동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만드는 것.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군요. 시골에 집을 지으시려고 한다는 건 지금의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하신다는 의미일까요?

  시골생활에 있어서는 거의 전적으로, 아니, 지네나 모기 같은 벌레 문제만 빼면 거의 대부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에는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간단하게 하루 일과를 들려주세요.

  보통 오전 8시쯤 일어나요. 최근에 카페 일을 조금 돕고 있거든요. 영동군 도서관에서 진행하던 문화강좌를 듣다가 선생님과 인연이 되었는데 그 선생님이 카페 사장님이에요. 선생님이 마침 일할 사람을 구하고 계시던 차에 제가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걸 아시고 먼저 일을 제안해주셨죠.

  많지는 않지만 월급을 받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카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지만 월급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 저축률을 높일 수 있는 데다 한여름에 집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여러 모로 좋아요. 당분간은 이렇게 생활하게 될 것 같네요.

 

네, 그렇죠. 저도 카페에 같이 출퇴근하며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곤 하는데요, 작년처럼 차 안에서 에어컨을 쐬지 않아도 되니 상황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그렇죠. 어쨌든 제가 하는 일도 컴퓨터만 있으면 할 수 있고 카페 일이 바쁘지 않기 때문에 아침 일찍 카페에 나가서 작업하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기는 합니다.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요. 지금 일이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시골에 일을 하러 온 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쓸 생각은 없고요, 오히려 2시까지만 근무하면 제일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퇴근 후에는 주로 뭘 하시나요?

  보통은 텃밭을 둘러보고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습니다. 벌레를 잡을 때도 있고요. 그런 다음 강아지들과 산책을 다녀오고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준비합니다. 저녁을 다 먹고 나면 각자 취미생활을 하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최근에 도예에 관심이 생겨 독학을 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11시쯤에는 잠자리에 듭니다.

 

아, 평소에 취미생활을 하시는군요. 시골생활이 특별히 취미생활에 도움이 되는 편인가요?

  음, 어느 정도는 그렇죠. 예를 들면 서울에서 도예를 배운다고 하면 근처 공방으로 가야 할 텐데 사는 동네에 공방이 없으면 교통체증이나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거기까지 가야 해요. 뭘 배우기도 전에 녹초가 되어버리는 거죠. 하지만 시골에서는 비슷한 거리라도 차가 막히지 않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취미생활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겠지만요.

 

 

 

시골살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이제까지의 삶을 보면 충남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대학시절,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서울에 계셨던 셈인데, 어떻게 시골로 내려올 결심을 하시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20대 중반부터 줄곧 있었어요. 도시에 살면서 답답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아내를 만나고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어요. 아내가 경미한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도시보다는 자연과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시골 환경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내도 제가 꾸준히 물 밑 작업을 한 결과 시골살이를 해보고 싶다는 입장으로 바뀌어서 자연스럽게, 또 그때 마침 적당한 매물이 타이밍 좋게 나와서 큰 문제없이 내려올 수 있었어요.

  강아지들을 키우는 데 마당이 있는 집이 더 낫겠다는 판단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도시에서 살게 되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배변 문제가 늘 스트레스였죠. 배변패드를 빨리 치워도 바닥에 냄새가 배고 마루가 들뜨는 걸 보면서 개는 집 안에서 키우면 안 되겠구나, 뒤늦게 깨달았어요. 지금은 강아지들이 마당에서 뛰어놀며 배변도 자연히 밖에서 하는데 그 편이 서로를 위해 좋은 것 같아요.

  아, 아주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회사생활을 했을 때 점심을 먹으러 나오면 햇살이 너무 좋고, 하늘이 너무 예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 나는 도대체 이 좋은 날 저 안에 갇혀서 뭘 하고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날씨도 제대로 못 즐기고 있나 싶어서 갑갑했어요. 닭장 안의 닭과 다를 바 없는 신세 같았죠.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 이 경험이 시골로 내려오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같네요. 이 기분을 중심으로 아내, 강아지들-스스로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시골살이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뻗어나간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우리 가족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 시골살이를 결심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골생활에 대체로 만족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시골살이에 있어 특별히 좋은 점으로는 어떤 것을 꼽고 싶으세요?

  특별히 좋은 점은 소음에 관한 것인데요, 일단 도시보다 집들이 띄엄띄엄 있으니 소음을 내는 것도 자유롭고 다른 집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같아요. 도시에서는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그러면 밤에 세탁기를 돌린다거나 주말 아침에 벽에 못을 박는다거나 할 수는 없죠. 그런데 시골에서는 그런 것이 자유로워요. 그러다 보니 악기를 연주하거나 뚱땅거리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좋죠. 기본적으로 평소에는 조용하니 스트레스도 덜하고요. 사생활이 좀 더 보호되는 느낌이에요.

  지역적 특성인지도 모르겠지만 저희가 사는 곳은 이웃들의 간섭도 심하지 않고 대부분 연세가 많으셔서 더 소음에 대해 너그러운 분위기예요. 이웃들이 80~90대이시다 보니 저희를 많이 귀여워해 주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처음에 시골에 왔을 때 후추와 율무가 너무 많이 짖어서 옆집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했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그럼 개가 짖지요'하고 쿨하게 반응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시골생활 2년 차인 지금은 닭을 키우고 있는데 새벽 대여섯 시부터 닭이 시끄럽게 울어도 다들 그러려니 해주세요. 닭이 울 때쯤 거의 다 깨어있으시거든요.(웃음)

 

그렇다면 나쁜 점은요?

  나쁜 점은 아무래도 벌레.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벌레 문제가 가장 큽니다. 모기도 도시보다 많고, 지네 같은 벌레도... 이따금씩 나오죠.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벌레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지네라도 한 번 나오는 날에는 집안의 모든 평화가 깨지니까요. 되도록이면 집 안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심정이죠.

 

사실 저희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건,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 크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죠.

  그렇죠. 특수한 케이스죠. 둘 다 재택으로 일을 하고 있고, 도시의 집을 세놓고 있어서 아주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골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맞아요.

  시골에도 일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도시만큼 다양하지 않고, 선택의 폭도 넓지 않기 때문에 밥벌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시골에 정착해서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시골생활로 인한 구체적인 변화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단 제가 많이 까매졌죠.(웃음) 자외선을 많이 받고 하다 보니까요. 그리고 음, 삶 전반이 좀 여유로워진 느낌이에요. 도시에서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었다면 시골에서는 훨씬 마음의 여유가 있어요. 문만 열면 싱그러운 자연을 느낄 수 있으니 매일매일이 여행 온 기분입니다.

  그 밖에 또 다른 변화가 있다면 먼저 텃밭농사를 하면서 외식 비율도 많이 줄었고요, 시간적 여유도 있으니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내 손으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나 평온함도 피부로 느끼는 변화 중에 하나예요.

 

시골생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요?

  겨우 1년 살아본 입장이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골살이가 꼭 본인에게 맞을 거라는 확신을 하고 내려오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모두에게 시골살이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어쨌든 도시에 살면서 시골을 꿈꿨다면 시골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실제로 그럴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시골살이를 하려고 마음먹은 지역이 본인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사실 제일 좋은 건 원래 사는 곳을 남겨둔 상태에서 시골집을 전세나 월세로 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원래 살던 집이 자가든 아니든 섣불리 처분해버리면 돌아갈 곳이 없어져버리는데 맞지도 않는 시골에 억지로 사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일 거예요. 그러니까 적어도 시골에서 한 두 달은 살아보고 결정을 하는 게 가장 좋죠. 시골에 집을 사거나 지어서 온 게 아니라 월세나 전세 형태로 왔다면 어쨌든 2년 정도만 참고 살면 되니까, 그렇게는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시골은 월세 부담이 도시보다 낮은 편이니까 와서 살아보고 지역이 마음에 들면 제대로 매물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만약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복비나 월세, 이사비 정도를 날리는 건데 시골에 살아보기로 했으면 그 정도는 투자라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덧붙여 경제적인 준비를 최소한은 해 와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저희처럼 컴퓨터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면 제일 좋을 것 같고요, 그게 힘들다면 시골에서 생활할 수 있는 돈을 어느 정도 미리 준비해오셔야 할 것 같아요. 시골에 와서 일을 구하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내려오면 생각보다 원하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생활할 수 있는 여윳돈이 있어야겠죠. 도시에 자기 집이 있어서 월세나 전세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시골에서의 삶이 적어도 1년 정도는 더 이어질 텐데요, 개인적으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도 덧붙여주세요.

  요즘 제가 생각하는 건 딱 하나예요. 우리 가족이 모두 행복하게 지내는 것. 시골에 내려와서 아내의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고 강아지들도 더 건강한 삶을 살고 있어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죠. 그 밖에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남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저는 앞으로도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집을 짓는 건 아무리 늦어도 10년 뒤에는 지을 수 있을 것 같고. 어쨌든 지금 제가 바라는 건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면 음, 저희가 처음 시골로 내려올 때 막연하게나마 목표로 잡았던 것이 '최소한의 자급자족'이었는데 시골살이 2년 차가 되니 그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뻐요.

 

  누군가는 웃을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일상 속에서 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상황을 떠올리면서 극단적인 상상을 잘 하잖아요.(웃음) 그런 점에서 시골살이는 든든한 보호막이 되죠. 실제로 그런 상황에 대한 걱정도 많이 줄었고요. 그러다 보니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감도 더 생겼죠. 어쨌든 굶어 죽지는 않겠다, 는 믿음이 생겼달까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서울에서는 직장을 잃으면 당장 먹고살 것이 없다는 불안이 기본적으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골에서는 직접 밭을 가꾸고 삶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면서 자기효능감을 키울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삶에 대한 자신감이나 만족감으로 돌아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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