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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Essay 006 : 악기

by 구루퉁 2020. 11. 26.

 한 번씩 악기를 구매한다. 그 악기는 무슨 종류가 되었든 한 동안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가 금방 방구석으로 밀려나 버린다. 처음 악기를 접한 것은 멜로디언. 유치원에서 배웠다. 리코더, 단소, 소고, 멜로디언, 케스터너츠, 탬버린, 트라이엥글. 여기까지는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한 번쯤 다루어 보았을 악기.

 중학생 때였나, 초등학생 때 였나? 반에서 합주를 한다고 했다. 역할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알토 리코더를 샀다. 보통의 리코더 보다 커다랗고 멋들어져 보였다. 가격도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었다. 처음 알토 리코더를 보았을 때 그 크기에 모두들 나를 주목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반짝이는 플롯을 들고 온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그 반짝임과 명랑한 소리에 넋을 잃었다. 주목은 그 친구의 차지였다.

 다음 학기에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클라리넷을 하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오보에도 가지고 있었다. 검은 관을 따라 반짝이는 은색 버튼들, 마치 제복처럼 멋있어 보였다. 이제 아이들의 관심은 그친구가 차지했다. 이후로 내 알토 리코더를 어디에 두었는지 팔았는지 잃어버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Photo by Austin Human on Unsplash

 20대 초반엔 친구들 자취방마다 기타가 있었다. 클래식 기타부터 일렉, 베이스 기타까지 다양했다. 너도 나도 기타를 치고 있으니 나는 흥미가 일지 않았다. 나는 중학생 때 교회에서 기타를 배웠고 군대에 가서 기타를 다시 쳤다. 잘 치지는 못했지만 노래 한 곡 정도는 겨우 쳐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나니 나도 대학생 때 친구들처럼 일렉 기타가 쳐보고 싶어졌다. 20대 후반이 되어서 일렉기타를 샀다. 앰프를 사고 이펙터도 샀다. 모두 중고였지만 멋있었다. 하지만 학원을 다닐 시간이 없었다. 독학으로 배울 시간은 더더욱이 없었다. 그렇다, 사실 핑계다. 몇 달 정도 구석에 처박혀 있던 중고 기타는 다시 중고로 팔려 나갔다.

 그러고 보니 한 번은 대금을 산 일도 있었다. 이것도 비싼 건 못사고 플라스틱으로 된 보급용 대금이었다. 대금산조 카페 에 가입해서 독학으로 소리를 내었다. 연습을 꾸준히 하질 않으니 소리가 나다 안나다 했다. 열심히 할 때는 악보가 눈에 들어오는데 몇 주 손을 놓으면 정간보에 글자가 하나도 안들어왔다. 이 대금은 아직도 방 한 구석에 있다. 중고마켓에 팔아야겠다.

 시골에 내려와 보니 가끔 섹소폰 소리를 듣게 된다. 강변에 나와 혼자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고, 읍내를 지나다가 식당에서 부르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중년의 매력인 것일까? 섹소폰의 화려한 금관들이 멋있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악기를 사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안다. 나는 악기를 다룰 만큼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나의 허황된 마음을.

 나는 악기를 다루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 재능과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열정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음악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참 자유로워 보인다.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하늘을 나는 새처럼 그 사람이 어딘가로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나를 감동시키는 음악을, 선율을, 리듬을, 그것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들. 내가 가지지 못한 그것이.

 

 이번엔 노래방 기계를 샀다.
이건 방구석으로 밀리더라도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쓸테니까.
이것이 나의 합리화래도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너무 즐거워서 기분이 좋다.
어쩌면 나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악기를 가지고 있다는 그 기분을 즐기는 걸지도 모른다.

 

No music No life. Photo by Simon No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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