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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자유 에쎄이

Essay 007 : 미니카

by 구루퉁 2020. 11. 27.

 

 학교 앞 문방구에 미니카 트랙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모두 문방구 앞에 모여있었다. 당시 미니카를 구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었다. 돈을 주고 사는 방법과 뽑기를 통해 1등에 당첨되는 방법. 문방구 앞에 모여있는 아이들도 여러 부류로 나눠졌다. 엄마가 미니카를 사준 그룹과 용돈을 모아 산 그룹이 있고, 용돈을 모두 뽑기에 투자했다가 사탕만 잔뜩 가지고 있는 그룹과 미니카를 갖기 위해 별 노력을 하지 않는 그룹. 나는 마지막 그룹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미니카를 사는 것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방영중이던 만화영화에서도 미니카가 등장해 가장 빠른 미니카는 아이들의 인기몰이를 했다. 아이들은 트랙 위에 자신의 미니카를 올려놓고 누가 더 빠른지, 그리고 360도 회전 트랙을 미니카가 돌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속도가 빠르지 못한 미니카는 360도 회전 트랙을 돌지 못하고 떨어졌다. 저학년들의 미니카와 뽑기로 뽑은 미니카들이 주로 그랬다.

블랙, 울트라, 프리즈마 등의 이름을 달고 있는 미니카 모터 

 친구들은 미니카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더 좋은 모터를 쓰는 것이 기본. 그 다음 중요한 것은 빵빵하게 충전된 충전지로 바꿨다. 당시 충전기를 가진 친구들이 많지 않아 학교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며 충전을 하고는 했다. 물론 선생님께 들키면 안됐다. 그 다음으로는 트랙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댐퍼를 달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니카의 타이어를 바꿨다.

 이 모든 부품은 문방구에서 팔았고, 당연하게도 비싼 부품일수록 성능이 좋았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돈이 많은 친구가 늘 트랙에서 승자가 되었다. 500원짜리 스펀지 댐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이제 미니카를 예쁘게 색칠하는 친구들이 늘기 시작했다. 빠르지 않아도 개성으로 승부하는 셈이었다.

 나도 나중에 미니카가 생겼다. 형이 구했고 나중에 내게 넘긴 미니카였다. 별로 기쁘진 않았다. 빠르지 않았고 특별할 게 없었다. 나는 한 번도 트랙 위에 미니카를 내려놓지 않았다. 좁은 방 한 구석에서 빠르게 문턱에 부딪혀 뒤집어지는 미니카를 볼 뿐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승부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유행이 지나갔다.

Photo by Viktor Theo on Unsplash

 최근 자동차를 바꾸면서 미니카를 떠올렸다. 더 좋은 엔진, 더 좋아진 편리성과 안정성을 광고하는 자동차들. 옵션을 선택할 때마다 돈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정도 옵션이 들어가면 그 다음 등급의 옵션이 없는 차와 가격이 비슷해졌다. 그러면 다음 등급의 차를 구경하게 되고 그렇게 계속해서 등급이 올라갔다. 나는 어떤 자동차로 바꿔야할지 알아보는 것에 지쳐버렸다. 남들과 계속 비교하는 것도.

 결국 나는 남들과 똑같이 예산을 정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옵션을 뽑을 수 있는 차를 선택했다. 가끔 산길을 타야하니 4륜을 기본으로. 디젤은 환경에 안좋다고 하니 그나마 휘발유가 낫겠지. 그렇게 고르다보니 연비가 망했다. , 이젠 모르겠다. 적당히 하자. 너무 많은 선택지들은 사람을 바보로 만들곤 한다. ‘왜 그걸 골랐어, 바보같이!’ 이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똑똑한 소비자인척 쟤고 따지고 이건 기업의 마케팅 전략일 뿐이야. 속을줄 알고?’ 이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똑똑하다 여기는 것에 신물이 났다.

그래서 내가 귀촌한 거잖아! 그런데 여기서도 똑같이 이러고 있네!’

 

경쟁, 그것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인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람에 따라 좀 먹기도 한다. 승자는 더 빠른 미니카를 구경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우쭐할 수 있는 것이다. 구경해주는 친구들과 느린 미니카가 없다면?

 

그래봤자 결국 누군가 만들어둔 트랙 위를 달리는 것 뿐이다.

 

Photo by Tim Carey on Unsplash

※ 레이싱카 관계자분들이나 좋은 차를 타시는 분들을 비방하는 목적의 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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