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란 무얼까? 직장인들이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거치는 한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휴가기간 동안의 업무처리계획이다. 회사 전체가 다같이 휴가기간을 갖는 경우를 제외하면 보통의 사무직은 개개인별로 휴가를 가기 마련인데, 이 때 내가 부재하는 동안 밀리는 업무에 대한 처리 방안이다. 나는 온라인마케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각 싸이트별로 들어오는 발주를 확인하고 제 때에 상품을 택배로 보내야한다. 그래서 나는 휴가기간 동안 직장동료들에게 꼭 처리되어야 하는 업무를 인계한다.
"저… 과장님? 제가 00일부터 00일까지 휴가라 발주랑 택배 좀 부탁드리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말을 꺼내면 직장상사들은 대뜸 '휴가? 부럽다. 나는 업무미팅 때문에 휴가도 못가는데. 휴가 어디로 가? 가서 뭐해? 누구랑 가? 와~ 좋겠네.' 따위의 말들을 하고는 한다. 잘 다녀오라는 소리가 나온다면 그 사람은 정말 직장생활을 잘해온 사람일 것이다. 휴가 중 업무처리를 부탁하기 위해서 상대의 표정과 상황을 살핀다. 혹시 상무님께 혼난건 아닌지, 차장님이 골치아픈 업무를 넘겨준 상황은 아닌지, 혹시 오늘이 월 마감을 하는 날이었던가? 살펴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회사에서 보장해주는 휴가를 사용하면서도 눈치를 계속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 이 휴가라는 것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노동자의 편의와 휴식을 배려해주는 것으로 관행에 가까운 것이다. 법정공휴일이란 것도 그러하다. 법정공휴일은 공무원이 쉬도록 법으로 정한 날이다. 사기업의 경우 공무원들이 쉬니 업무가 진행되지 않아 같이 쉬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회사에서 사규나 근로계약서로 공휴일에 대한 유급휴일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공휴일에 일을 한다고 추가 수당을 지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020년 1월 1일 부로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공휴일의 법정유급화가 시행되었다. 30인 이상 사업장은 2021년 1월 1일 부로, 5인 이상 사업장은 2022년 1월 1일부로 시행이 된다. 뭐가 되었든 여름 휴가라는 것은 노동법이나 기타 어느 법에도 보장해줘야한다는 항목이 없다. 그저 복지차원의 일이다.
그래서일까, 눈치를 보게된다. 특히나 연차를 사용할 때는 더욱 더 눈치를 보게 된다. 아니다, 내가 눈치보는 이유는 내 일을 남에게 부탁해야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도 남들이 휴가갈 때 일을 돕기도 한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니 남이 처리한 일들에 대해 크게 신용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부재상황이 발생되고나서 복귀를 하게 되면 발주입력은 제대로 했는지, 택배 운송장입력은 제대로 되어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을 한다. 대부분 문제없이 일처리가 되어 있지만 내가 처리하지 않은 일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있는 것이다. 피곤한 완벽주의자. 완벽하지 않은 완벽주의자라 피곤하게 사는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피곤해진다. 직장인들에게 여름 휴가란 이런 것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지친 몸을 리플레시하고 업무로 굳어버린 머리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시간일… 다 개소리다. 그냥 쉬는 날인 것이다. 공식적으로 쉬는 날, 노는 날이다. 여름 휴가 때 바다로 갈지 계곡을 갈지 즐거운 상상을 하며 휴가지에 가서 무얼 입을까, 무얼 먹을까, 낯선 곳에 대한 기대도 하기는 개뿔. 집에서 쉬고 싶은 것이다.
여름 휴가 땐 아내에게 집안 일도 요리도 모두 미루고 홈캉스를 하자고 말해야겠다. 밥은 전부 시켜서 먹거나 외식을 하고, 빨래는 휴가 전에 모두 처리하고 휴가 기간 동안은 아무 것도 하지말자. 휴가 땐 침대에 누워 '오늘 뭐하지? 심심한데.'라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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