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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퉁의 기록/ReadingBooks

RB002 :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by 구루퉁 2021. 4. 7.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 박경리의 소설이다. 

  박경리, '토지'를 쓴 작가로 한국문단에 거대한 획을 그으신 분이다. 문학을 공부한다면 자주 들어봤을 것이고, 문학을 공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학창 시절에 한 번 이상 들어봤을 그 이름, 박경리. 그리고 그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은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을 정도였다. 또한 대학 논술 시험에도 종종 나오는지라 요즘 청소년들 중 책 좀 읽는다 하는 청소년이라면 다들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최근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나 리처드 랭엄의 한없이 사악하고 더없이 관대한 등을 읽다가 지쳐서 문학 소설을 잡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는 한국 근현대(?) 문학은 여전히 정겹고 슬프고 먹먹하다.


김약국의 딸들
작가 : 박경리
분류 : 문학
장르 : 소설
발표년도 : 1962, 을유문화사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은 작가의 고향인 통영이다. 시대적으로는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일제강점기의 통영은 어떠한가?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시대적 배경과 일부 겹치니 미스터션샤인의 바닷가 버전을 상상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일본인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등장하는 외국인이래 봐야 통영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힐러(목사, 선교사)와 케이트(전도사)가 전부이며 이들의 비중은 별로 크지 않다. 그 시대의 경성이라면 각국의 권력구도와 힘겨루기로 인해 외국인들이 많을 테지만, 통영 같은 작은 항구는 또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시대의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가 박경리는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계산'으로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1956년 단편소설 '흑흑백백'을 현대문학에 발표한다. 이후 1957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여 '전도', '불신시대', '벽지' 등을 발표했다. 그렇다. 박경리의 초기 작품들은 단편소설이다. '김약국의 딸들'은 박경리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까 김약국의 딸들 1장은 어쩐지 단편소설의 호흡이 느껴진다. 단편소설을 써본 사람만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첫 시작은 통영을 묘사하면서 시작이 된다. 이 부분은 통영의 옛지명들이 등장하다 보니 집중이 잘 안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인물들이 나오고 사건을 이끌어가면서 흡입력이 생긴다. 김약국의 딸들은 약국을 운영하는 김씨 집안의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인물들이 꽤 등장한다. 1장~2장은 1대~2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고 3장부터 3대인 김약국의 딸들 이야기가 슬슬 나온다. 

1대 : 김봉제, 김봉룡, 김봉희 3남매
2대 : 김연순, 김성수(김약국)
3대 :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인물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하지만 결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왼쪽부터 나이 순인데, 1장이 봉제, 봉룡, 봉희의 이야기라면 2장은 봉제의 딸 연순과 봉룡의 아들 성수의 이야기, 3장부터는 3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간단하게 나눴을 때의 이야기이지 사실 모두 유기적으로 섞여서 딱딱 나눌 수는 없다. 그 밖에 그들의 부인들과 남편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까지 더하면 인물이 꽤나 많이 등장해 이름을 잘 기억해두지 않으면 초반엔 헷갈릴 수도 있는 부분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이 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개성과 욕망이 단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인물들의 말투나 행동양식마저 겹치는 일이 없다. 

  아무튼 3대의 이야기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이라는 순서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순서대로 부의 이동이 일어난다. 김약국 집안은 기존의 지역유지라고 볼 수 있는 집안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지방의 신흥세대로 부가 이동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당시의 시대상에 따라 시대가 급격히 변하면서 양반가문의 몰락과 신흥 상인세력의 득세 같은 것이다.

  재미있는 점들은 인물간의 욕망들이다. 욕망이 상황에 따라 엇갈리게 되는 것이 소설의 주요 포인트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용란과 한돌, 기수의 관계이다. 용란은 셋째 딸로 하인이던 지석원의 아들 한돌과 사랑하는 사이인데 김약국은 기수에게 용란을 주려고 한다. 기수는 내심 용란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한돌과 용란이 사랑을 나누는 것을 김약국과 용빈이 보게 되고 김약국은 한돌을 통영에서 쫓아낸다. 이로 인해 용란은 한돌이나 기수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고 아편쟁이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당시 시대가 그러한 듯, 여성에게 결혼이란 인생을 바뀌는 거대한 사건, 그 무엇이었다. 이 결혼, 정절이라는 사건과 개념들이 인물의 욕망과 얽혀들어가는 것이 모든 비극의 발단이 된다. 

  이 비극이 이 소설의 중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품에는 욕망의 엇갈림, 부의 사회적 이동과 여성의 운명이 한데 어울려 주제화되어 있다." 

  인물이 많고 비극적인 내용이다 보니 죽음에 대한 서술이 생각보다 간결하다. 그리고 그 간결함은 사실 죽음이라는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그 거대한 절망에 대해서 우리는 처연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러니까 팔자나 운명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인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덧, 다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머리속에서 통영사투리가 떠나질 않는다.

덧, 저항과 투쟁을 로맨티스트라고 보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덧, 시대가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념적 국가적인 대립에 관한 내용이 거의 없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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