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뜰의 기록/뜨리의 슬기로운 OTT 라이프

영화 : 트라이앵글 (뜨리의 슬기로운 넷플생활)

by 랄라맘맘 2021. 8. 11.

 

나는 그저 바다가 나오는 호러 영화를 보고 싶었을 뿐,

영화 <트라이앵글>

영화 트라이앵글 네이버 평점 및 정보

 

입추가 지났지만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주말.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코로나19 시국의 답답함과 삶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권태를 달래기 위해 영혼의 동반자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고만고만한 포스터와 이미 본 영화들 속에서 적당히 흥미로워 보이는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트라이앵글>이라는 다소 진부한 제목이 붙은 영화에는 친구들과 함께 떠난 요트 여행에서 폭풍을 만나 의문의 유람선에 오른 여자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가 덧붙여져 있었다. 썸네일에는 모든 의욕을 잃은 듯 텅 빈 눈동자를 한 여자와 그런 여자를 뒤에서 노리는 복면의 괴한이 있었다. 살겠다고 덥석 올라탄 유람선에서 사이코패스를 만나거나(영화 <하우스 오브 왁스>st) 다른 세계의 크리쳐 따위가 튀어나오는(영화 <사일런트 힐>st) 내용을 상상한 나는 날도 더운데 바다나 실컷 보자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영화가 선보일 진짜 지옥에 발을 들인 줄도 모르고.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지옥인가.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끝이 없는 것’. 아무리 끔찍하고 두려운 상황이라도 끝이 있다면(설령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진짜 지옥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악몽과도 같은 일이 끝없이 반복된다면? 출구인줄 알았던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나오고, 돌고 돌아 결국 똑같은 풍경에 도달하게 된다면?

<트라이앵글>은 바로 그런 지옥에 관한 이야기다.

혼자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우는 제스는 자신이 일하는 식당의 손님으로 왔다가 친구가 된 그렉의 제안을 받아 그의 요트 트라이앵글호를 타고 휴가를 떠난다. 그렉과 그와 함께 요트를 돌보며 지내는 빅터, 그렉의 절친한 친구인 다우니-샐리 부부와 샐리의 친구 헤더, 그리고 제스는 맑게 갠 바다로 순조롭게 나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어두운 구름이 몰려들고 순식간에 폭풍이 몰아치며 요트는 전복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일행은 물에 빠지고 심지어 헤더가 실종되기에 이른다. 그때, 조난을 당한 그들의 앞에 거대한 여객선 아이올로스호가 나타나고 일행은 그 배에서 한 사람의 실루엣을 본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며 여객선에 오른다.

 

<스포일러 포함 :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내려주세요>

 

그런데 커다란 여객선의 규모와 걸맞지 않게 내부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행들이 소리쳐 사람을 불러보지만 고요하기만 하다. 난파된 요트에서 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만이 그들 곁을 맴돌지만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행들은 불안과 스트레스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빅터를 시작으로 배 안의 어떤 존재에게 습격을 당하기 시작한다.

 

배에 탔을 때부터 이 공간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던 제스는 자신이 그렉을 죽였다는 샐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복면을 쓴 괴한이 샐리와 다우니마저 죽이고 제스를 쫓아온다. 제스는 괴한을 피해 추격전을 벌이다 그를 여객선 밖으로 밀어낸다. 정체를 밝히라는 제스에게 모두를 죽이라는 의문의 말만을 남긴 채 괴한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어떻게든 이 여객선에서 벗어나 아들에게로 돌아가려는 제스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자신을 비롯한 그렉 일행이 여객선 근처에서 나타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롭게 구조를 요청하고 다시 여객선에 올라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배에 타서 나누는 대화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그 전과 같다.

이들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이 이상한 여객선에서 모두가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스는 상황을 살피며 어떻게든 그 전과 다른 전개를 만들어보려고 애쓰지만 그 역시 또 다시 반복될 상황을 위한 꼭짓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영화상에서 처음 여객선에 탔을 때 일행을 습격하던 괴한이 더 이전에 여객선에 도달한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과정이 숨 가쁘게 전개된다.

 

<스포일러 끝 : 아래 부터는 다시 감상입니다.>

이러한 서사를 독특한 문법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최고로 꼽는 장면은 절망에 빠진 제스가 배에 설치된 격자형 구조물에서 아들의 사진이 담긴 자신의 목걸이를 발견하고 놀라 그 목걸이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장면이다. 목걸이가 떨어진 곳에는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목걸이들이 쌓여 있다. 지금 이 상황을 겪는 것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라는 명백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진짜 지옥은 이런 것이 아닐까. 수없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내가 무수히 교차한다. 각각의 내가 삼각형의 꼭짓점이 되어,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영영.

 

그렇다면 바다로 떨어진 제스는 어떻게 되느냐고? 이 부분은 직접 확인하시라.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해도 끝은 없으며, 이 지옥은 바로 제스 스스로가 만든 지옥이라는 것.

 

아들을 보고 싶은 간절함으로 집에 도달하면 그곳에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제스는 이미 알고 있다. 이 무수한 인과의 고리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만이 아들을 다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동시에 이 지옥을 만든 것이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여객선의 이름이기도 한 아이올로스는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아버지다. 아래로 떨어진 바위를 다시 산 정상으로 올리며 끝없는 고통을 겪는 시지프스. 어쩌면 이 여객선은 그런 시지프스를 잉태한 공간이라는 의미일까? 그저 바다가 나오는 호러 영화를 보고 싶었던 나는 며칠째 이 영화의 장면과 의미들을 곱씹고 있다. 끝도 없이.

Photo by Ivana Cajina on Unsplash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