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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37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3 : 서리 시골에서 서리라고 하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 떠오르기 마련. 옛날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런 서리를 하면 범죄가 된다. 그래서 시골에서 서리라고 하면 나는 겨울 무렵 시작되는 ‘frost: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떠오를 것도 없이 서리는 내 삶의 일부로 들어와 있다. 아침에 문을 열면 마당 잔디에 낀 서리부터 난간이며 대문이며 하얗게 얼어붙은 것이 겨울 왕국을 떠올리게 한다. 출근을 하려면 자동차 유리 표면에 앉은 서리를 긁어내야 한다. 지하주차장이 있는 도시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없었는데 나는 매일 아침마다 스크래퍼를 들고 차 앞유리와 싸움을 벌인다. 퇴근 후에 앞유리에 덮개라도 씌워두면 편하겠지만, 자꾸 잊어버리거나 생각나도.. 2020. 12. 4.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2 : 너구리 우리 부부가 너구리를 처음 본 것은 처음 귀촌을 하러 내려온 봄. 당시 집 뒤편에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옥상에 올라가 캄보디아에서 사온 해먹을 설치하던 우리는 폐가에서 너구리를 발견했다. 들개와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 눈두덩이가 거뭇거뭇하고 날렵해보이는 몸이 아니라 오동통통한 몸통을 가지고 있으며 꼬리가 허스키처럼 통통한 것이 국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고르자브종 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폐가는 길고양이들의 안식처인지라 매일 사료를 상납했었고, 우리집 강아지들 후추와 율무는 길고양이가 우리집 담벼락을 넘는지 안넘는지 옥상에 올라가 감시하고는 했다. 그곳 폐가의 마루 한켠에서 나타난 한국 너구리. 처음에는 저게 뭐지 싶었는데 곧 한국너구리라는 것을 깨닫았다. 한국인이라면 너구리라는 말에 라면이 떠.. 2020. 11. 25.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1 : 닭 ‘닭. 그것은 사랑이다.’ 이 문장에서 닭은 요리되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시골에 내려온 이유 중에 하나가 후추와 율무의 복지였다. 마당있는 집. 목 줄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을 제공하고 싶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집은 동물복지 계란을 사먹는다. 동물복지란, 자연방사란, 되도록 난각번호의 끝자리가 ‘4’가 아닌 계란을 구입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생략한다. 죽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닭. 요즘 도시의 아이들이 닭을 처음 접하는 것은 백숙이나 후라이드 치킨이다. 살아 움직이는 닭이 아니라 요리가 된 닭을 가장 처음 접하게 된다.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다르겠지만 마을에 한 두 집 정도는 닭을 키운다. 최근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나 닭을 키.. 2020. 11. 24.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0 :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리즈 에쎄이를 벌써 9개나 연재했다. 이쯤에서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 마주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중에 가장 먼저 꼽고싶은 것이 있다. 도시인들을 지치게 만들는 바로 그것, 교통체증! 출퇴근 시간은 어째서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서울에 살 때는 어딜가든지 1시간은 걸렸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해도 1시간을 잡는 것이 서울 교통의 정석. 빡빡한 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숨막히는 지옥철에 몸을 구겨넣는 것이 출퇴근! 가기 싫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던 나는 시골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교통체증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매우 .. 2020. 11. 20.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9 : 다리가 잠기면 고립되는 마을 오늘은 비가 내린다. 간만에 시원하게 쏟아지니 기분이 좋…기는 개뿔, 양파 밭이 걱정된다. 외부수돗가에 수도꼭지가 고장나서 양갈래 수도꼭지로 교체하려고 주문을 해두었다. 그간 양파들은 목이 말랐을테지. 흙은 푸석해지고. 그래서 어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장마철 비처럼 장대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양파밭에 볏짚으로 덮어줘서 굵은 비를 맞고 어린 양파가 쓰러지진 않을 것 같다. 으쓱, 나도 이제 시골 생활 4년차. 제법 양파밭 걱정도 할 줄 안다. 대부분 실제 농사꾼들은 하지 않는 걱정인데 내가 어설프다 보니 하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들이 보면 양파밭 몇천 평 하는 줄 오해할 것 같은데, 마당 한 켠에 모종 한 판 정도 심어둔 것이 전부다. 올 해 .. 2020. 11. 19.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8 : 절지동물 으갸-악!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왜? 무슨일이야! 벌떡 일어나는데 아내가 침대로 뛰어들어온다. “지네! 지네!” 지네? 커? 와이프는 나를 껴안고 고개를 끄덕인다. 서울로 다시 가지고 하면 어쩌지? 지네는 나도 무섭고 싫은데. 조심스레 주방으로 가본다. 어딨어? 어디야? “저쪽에 있었어.” 아무 것도 없다. 싱크대 아래로 숨은 모양이다. 얼마나 커다란 지네였을까? 그 날 우리 부부는 바퀴벌레용 살충제 한 통을 모조리 주방에 뿌렸다. 지네가 숨을만한 곳 구석구석 꼼꼼하게 뿌렸다. 다음 날 지네는 거실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슬금슬금 현관으로 나가고 있었다. 컸다. 10센치는 넘어 보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지네. 온몸에 닭살이 올랐다. 꼬리뼈에서부터 타고올라오는 소름. 나는 아내에.. 2020. 11. 6.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7 : 고라니 야생동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왔다. 10대 이전엔 야생동물하면 호랑이가 떠올랐고 이후엔 늑대나 여우, 20대가 되어서 길고양이들, 30대가 되어서는 고라니가 떠오른다. 10대 이전에는 야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와일드함 때문인지 호랑이가 떠올랐지만 우리나라엔 더 이상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늑대나 여우를 쉽게 떠올렸다. 그리곤 20대가 되어 자취방에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서 길고양이를 떠올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야생동물은 고양이밖에 없었다. 30대인 지금은 참 다양한 동물들이 떠오르는데,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라니. 한밤중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그 강렬함에 누구라도 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운전을 하면서 고라니.. 2020. 11. 5.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6 : 시골 공기와 미세먼지 “나 귀촌했어.” “정말? 왜? 어디로? 거기서 뭐하는데? 공기는 참 좋겠다.” 나는 인간관계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전하다가 귀촌했음을 알리면 으레 반응이 이렇다. 첫 번째로는 ‘정말?’. 그럼 거짓말을 하겠는가? 여기서 정말은 추임새나 놀라움의 정말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나오는 말이 ‘왜?’ 그리고 ‘어디로?’. 아이고, 일일이 설명하려니까 힘들다. 왜 귀촌을 했을까? 왜 하필 또 이곳을 선택했나? 수많은 이유가 있는데 이 사람은 어떤 이유를 대야 납득을 할까? 애초에 납득을 시켜줘야 하나? 하지만 나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은 나의 안부가 궁금했던 것일 테고 나에게 그 정도의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도 마땅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 물음표들에 .. 2020. 11. 3.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5 : 새 사실 새는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도 새들은 살고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좀 더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다. 아니, 정확히 우리 마을에서는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다. 우리 마을은 배산임수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뒤로는 산이고 앞으로는 강이다. 그래서 산새들과 강새들을 볼 수 있다. 산에 사는 새들은 주로 몸집이 작다. 도시에 살 때는 작은 새라 하면 참새를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참새보다 딱새가 더 많다. 그 다음으로는 붉은머리 오목눈이. 흔히들 뱁새라고 말하는 새다. 그 다음이 되어서야 참새가 나온다. 박새도 참새 만큼 자주 보이는 새다. 매일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들 때문에 새박사가 다되어간다. 우리 집 앞으로 흐르는 개울엔 수풀이 무성한데 이 작은 새들은 주로 그 수풀에서 .. 2020. 10. 26.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4 : 전원주택과 농가주택 그 사이 시골 마을들을 살펴보면 농가주택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 있고, 전원주택이 주를 이루는 마을이 있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주로 농가주택으로 들어가고, 귀촌하는 사람들은 보통 전원주택 단지로 들어간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대부분 그렇게들 한다. 농가주택은 대부분 오래된 마을로 수십 년 전부터 형성된 마을들이 많다. 하지만 전원주택 단지는 보통 십수 년 이내에 형성된 마을들이다. 부동산 업자들이 기획단지를 만들어서 분양하는 형식이다. 우리 마을은 은퇴자를 위한 마을이라는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마을 어르신들 말로는 8년즘 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2012년도에 마을이 만들어진 모양이다. 분양 당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하지만 아무튼 여기까지 왔다. 약간 어중이떠중이 느낌의 마을이.. 2020. 10. 23.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3 : 마을발전기금 한 때 귀농귀촌 붐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때 선배 귀농귀촌인들이 마을발전기금이라는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나 이에 대하여 각 커뮤니티에 문의 글들을 올렸다. 이는 귀농귀촌 커뮤니티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장례 차량이 본인의 선산으로 가기 위해 한 마을의 농로를 이용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돈을 요구하면서 마을발전기금 논란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수면 위로 떠오른 바가 있었다. 마을발전기금이란 뭘까? 마을에 전입해 오면 그동안 마을 발전을 위해 기금을 냈던 사람들의 액수만큼 또는 마을협의회에서 정해놓은 금액만큼 기금을 낼 것을 강요한다. 기존에 살던 사람들이 만든 마을 길이나 수도, 전기 등을 끌어오기 위한 노력 등, 마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것을 아무 대가 없이 .. 2020. 10. 22.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2 : 산책 산책이라고 하면 가을방학의 노래, ‘속아도 꿈결’이 떠오르지 아니할 수 없다. 너무 공감이 가는 말들로 이루어진 노래 가사와 잔잔한 멜로디 때문일 것이다. 검색을 통해 가사를 한 번 감상해보자. 가을방학 – 속아도 꿈결 가사 (가사 전문을 올리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어 삭제하였으니 검색을 통하여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가사는 ‘정해진 목적 없이 발길 가는 대로 갈 것’이다. 그렇다. 산책엔 목적이 없어야 한다. 생각도 없어야 한다. 그냥 걸음이 날 이끄는대로 이 길을 걷다가 무엇을 마주칠지 모르는 채로 그냥 걷다가 우연히 무언가 마주치는 것이 산책이다. 이 마주침은 차가운 바람, 파란 가을 하늘이 될 수도 있고, 잘 익은 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될 수도 있고, 다람쥐를 마주친다.. 2020.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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