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기록/어쩌다 시골살이52 28 버스를 탑시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8화 - 버스를 탑시다 현지인(?)의 첫걸음, 버스타기 현지인, 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각자의 기준이 있겠지만 내게는 어려움 없이 버스를 탈 수 있는 그 순간, 부터다. 거의 모든 해외여행을 함께 한 나와 남편은 여행지의 기차나 지하철을 타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트램이나 버스를 타려고 하면 정신이 혼미해졌다. 유명한 도시에서도 우리는 트램을 타지 못해 길을 헤맸고, 버스 정류장을 잘못 찾아 엉뚱한 곳에서 버스를 탔다. 그러다 보니 트램과 버스, 그중에서도 어느 도시에 가나 있는 버스를 타는 일은 특히 우리에게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일이 되고 말았다. 가장 최근에 '외국에서 버스 타기'에 도전한 것은 현지인이나 현지인인 지인이 있지 않고.. 2023. 2. 8. 27 축제의 계절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7화 - 축제의 계절 포도 그리고 와인 몇 년 새 지역 축제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지방의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부터 조형물이나 조명시설을 설치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축제까지 그야말로 지금은 여러 가지 축제가 난립하는 '축제 전국시대'라 할만하다. 빠른 시간 안에 이렇게 많은 축제가 생긴 이유는 자명하다. 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 그 지역의 주민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축제를 통해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지방자치단체들, 내가 사는 영동군도 예외는 아니다. 영동군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큰 축제가 열린다. 8월 말에 열리는 '포도축제'와 9월에서 10월 중에 열리는 '와인축제'. 두.. 2023. 2. 7. 26 가을이 왔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6화 - 가을이 왔다 가을엔 걸어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온 세상을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던 공기가 어느 순간 서늘하게 목덜미로 파고드는 계절의 감각만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십 번이나 겪은 일이지만 여름에서 가을로, 그러니까 봄부터 사방으로 뻗쳐나가 여름에서 절정을 맞은 기운이 서늘한 살기를 뿜으며 음으로 잦아드는 가을의 문턱은 언제나 내게는 낯설고 새로운 감각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과는 별개로, 더위가 한 풀 꺾이며 조금씩 시원 해지는 이 시기는 일 년 중 얼마 되지 않는 좋은 계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 이 시기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마니까. 그래서 틈날 때마다 걸었다. 시골의 가을은 정말인지 집에만 있기에.. 2023. 2. 6. 25 시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5화 - 시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하루의 길이 십 대 시절부터 나는 내가 있을 곳은 내가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 어디에도 내 자리 같은 건 없을 것 같았다. 태어나서 자란 고향 말고, 학교 때문에 살아야 하는 곳 말고, 내가 선택한 곳- 그런 곳에서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온전히 나답게 살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시골로 옮겨왔다. 시골에서 생활한 지 여러 달이 흐르면서 시골생활은 어떠냐는 물음을 자주 받게 되었다. 가볍게 안부차 묻는 사람에게도,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사람에게도 '아무래도 나, 시골 체질인 것 같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시골생활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다시금 묻고, 그때마다 나.. 2023. 2. 3. 24 월류봉에 올랐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4화 - 월류봉에 올랐다 변한 것은 산이 아니라 나와 남편은 많은 부분에서 닮았고 또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부부라고 해도 결국은 다른 사람이니까, 지극히 당연한 일. 우리 역시 관심사나 취미, 개그코드는 맞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집에 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편과 달리 나는 대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어딘가를 다녀와야 잠이 잘 오는 사람이라는 것. 잠시라도 나가 바람을 쐬고 오는 것이 나에게는 휴식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일정일뿐 쉬는 것이 아니었다. 쉬는 방법이 극명하게 다르니 우리는 이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 연애 시절부터 이 문제로 거듭 갈등을 빚었는데 한 걸음 먼저 물러서서 해결책을 찾은 것은 남편이었다. 가정의 평화.. 2023. 2. 2. 23 달콤한 일상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3화 - 달콤한 일상 과일이 있는 삶 : 복숭아, 그리고 포도 영동군에는 복숭아 농사를 짓는 곳이 많다. 우리 집 근처에도 꽤 큰 복숭아 밭이 있다. 처음에는 무슨 나무인지도 몰랐지만 가지 끝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던 꽃이 지고 푸릇푸릇한 잎이 온 나무를 뒤덮고, 정체모를 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리더니 어느 순간 복숭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 이 나무가 복숭아나무로구나 깨달았다. 그간 코 끝을 간질이던 달큰한 향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오며 가며 복숭아나무의 성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복숭아를 먹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우리 숨을 마시며 자란 이 동네의 복숭아나무는 우리와 이웃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가장 처음 복숭아를 산 곳은 산책길 옆에 있는 농.. 2023. 2. 1. 22 그날의 우리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2화 - 그날의 우리 물한계곡 가족나들이 절기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그저 순서대로 흘러갔다. 따뜻한 봄기운이 맴돌기 무섭게 더운 초여름 날씨로, 습기를 잔뜩 품은 공기와 장마로- 그리고 무더위로 이어지는 여름의 순서. 한 세기 전에도 이곳의 여름은 더위-습함-장마-무더위로 이어져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여름은 그 순서대로 왔다 갈 것이었다. 과거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인간의 탐욕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지구가 매년 여름마다 최고 기온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뿐. 70여 년을 살았지만 지금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이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새삼 2017년 여름의 위엄을 실감하며 나는 과즙이 풍부한 여름 과일을 먹고 에어컨도 쐴 겸 등록한 운전학원에서 면허를 땄다. 그렇게 시골에서 처음 .. 2023. 1. 31. 21 기나긴 장마의 시작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1화 - 기나긴 장마의 시작 시골살이도 비수기 얼마만큼이나 수분을 머금을 수 있을지 실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날이 습해지던 공기는 어느 날 갑자기 그간 모아두었던 수분을 한 번에 쏟아냈다. 더없이 긴 장마의 시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안에서 바깥의 비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시골 생활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야외활동을 할 수 없으니 우리는 한동안 울적했다. 비가 오면 산책도 갈 수 없으니 강아지들도 덩달아 힘이 없었다. 후추와 율무도 창문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았지만 해는 좀처럼 뜨지 않았다. 지겹도록 비가 내리다가 오랜만에 해가 나면 그간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산책을 가자며 졸라대는 강아지들을 앞세워 축축.. 2023. 1. 30. 20 옥상의 계절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0화 - 옥상의 계절 달밤의 밤손님 열기가 절정에 달하는 낮에는 얼른 이 계절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싶다가도, 밤이 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여름도 그렇게 나쁜 계절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골은 열대야가 도시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우리는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옥상을 자주 오르내렸다. 옥상에 평상과 좌식 테이블, 해먹과 모기장, 텐트까지 마련해두고 그날그날 기분따라 여름밤을 한껏 즐겼다. 어떤 날은 해먹에서 여름밤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었고 또 어떤 날엔 텐트 안에 누워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름의 낙이라고 하면 단연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마실 사람. 가장 자주 먹게 되는 안주는 아무래도 치킨이었는데, 어렸을 .. 2023. 1. 28. 19 뱀이 나왔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9화 - 뱀이 나왔다 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 뱀 맞습니다 시골에 살겠다고 엄마에게 처음 말했던 날, 엄마의 낯빛은 어둡게 변했다. 엄마의 반응을 예상은 했었지만, 그 뒤의 물음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뱀 나오는 거 아니야? 뱀? 내가 아는 그 뱀? 다리 없고 몸이 긴, 그 뱀?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야생의 뱀을 보지 못한 나는 웃으며 설마, 집 마당에까지 뱀이 들어오겠어? 하고 말끝을 흐렸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뱀, 걔가 그렇게 아무 데나 쉽게 나오는 애는 아니겠지, 생각하면서. 이사 후 시골집에 처음 놀러 와서도 엄마는 뱀이 있을까 텃밭 근처를 꺼렸다. 우리 집 텃밭 뒤로는 나지막한 동산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종종 족제.. 2023. 1. 27. 18 여름나기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8화 - 여름 나기 에어컨 없이 산다는 지난봄, 어쩌다 시골에 살게 되어 급하게 이사를 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우리 집 살림에 놀라며 에어컨을 싣는 것을 포기했다. 이사 오는 집에 에어컨 자리가 없기도 했고, 옆집 할머니 집에도 실외기가 보이지 않아서 아, 어쩌면 시골은 도시만큼 덥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한 까닭도 있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에어컨을 서울 집에 놔둔 채 시골로 내려왔다. 그렇게 맞은 첫여름이었다. 초여름까지는 그래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찬물 샤워를 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낮 시간만 피하면 아침저녁으로 바깥 활동을 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강아지들도 바람이 잘 드는 문 앞에 누워 배를 내보인 채 혀를.. 2023. 1. 26. 17 여름의 문제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7화 - 여름의 문제 어서와, 시골 여름은 처음이지? 메추리를 부화시키고 돌보는 사이 슬그머니 여름이 다가와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한 점 바람이 자주 간절했고, 얼음을 얼리는 횟수가 늘었다. 재작년쯤 비가 새서 올렸다는 지붕이 옥상 바닥을 대신해 열을 흡수해주는 덕에 집 안의 공기가 서늘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대문 바로 위에 처마가 있어서 현관으로 강한 햇빛이 들이치지 않기도 했다. 온 집의 창문이며 문을 다 열어두면 통풍이 잘 되어서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시골집에서 더위 그 자체 때문에 겪는 고통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골의 여름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선사했.. 2023. 1. 25.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