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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3 : 서리 시골에서 서리라고 하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 떠오르기 마련. 옛날에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런 서리를 하면 범죄가 된다. 그래서 시골에서 서리라고 하면 나는 겨울 무렵 시작되는 ‘frost: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는 것’이 먼저 떠오른다. 떠오를 것도 없이 서리는 내 삶의 일부로 들어와 있다. 아침에 문을 열면 마당 잔디에 낀 서리부터 난간이며 대문이며 하얗게 얼어붙은 것이 겨울 왕국을 떠올리게 한다. 출근을 하려면 자동차 유리 표면에 앉은 서리를 긁어내야 한다. 지하주차장이 있는 도시에서는 이런 불편함이 없었는데 나는 매일 아침마다 스크래퍼를 들고 차 앞유리와 싸움을 벌인다. 퇴근 후에 앞유리에 덮개라도 씌워두면 편하겠지만, 자꾸 잊어버리거나 생각나도.. 2020. 12. 4.
Essay 010 : 1:1 해외 결연 아동 후원 2014년,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해외 결연 아동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7년째. 거의 지구 반대편 도미니카공화국에 있는 아이를 후원을 했는데 그 아이가 올해 18살이 되면서 이번 달이 마지막 후원이 되었다. 후원하고 있는 다른 아이도 있지만, 이 아이가 첫 후원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벌써 성인이라고? 후원 내역을 살펴보니 해마다 꼬박꼬박 선물금도 따로 챙겨 보내줄 만큼 정이 많이 든 아이다. 아, 이젠 아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이 친구가 커 가는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7년 동안 지켜봐 오니 후원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갖기보다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 잘하자는 생각으로 후원을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갖게 되면 그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 2020. 12. 3.
Essay 009 : 유통기한과 소비기한 유통기한 표시제도가 도입된지 35년이 지났다. ‘식품 유통기한 표시 제도’는 1985년에 도입되어 이제 모든 국민들이 식품을 구입할 때 유통기한을 확인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식품을 소비할 수 있는 최종기한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유통기한이라는 것은 식품이 부패하는 시점을 1로 봤을 때 여기에 안전계수 0.7을 곱한 기한이다. 이것은 소비자들이 안전하게 식품을 구매하고 신선한 제품을 선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식품기업을 위한 제도이다. 소비자 중심의 제도라고 보기엔 어렵다. 무슨 말일까? 유통기한은 식품을 유통할 수 있는 기한. 제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통’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것을 .. 2020. 12. 2.
Essay 008 : 정시출근 MZ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는 자주 바뀌어 온 것 같다. X세대, Y세대를 시작으로 N포세대, Z세대, 밀레니얼세대 등 다양한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이 나왔는데, 요즘엔 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을 MZ 세대로 통합해 부르고 있는 추세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통합해서 부를만한 어떤 커다란 세대의 정서가 있다는 뜻이 되겠다. 이 MZ세대의 특징을 꼽자면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환경에 대한 친밀도와 SNS를 기반으로 한 소셜라이프를 꼽을 수 있다. 이러한 MZ세대가 이제 직업전선으로 뛰어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직장에서 MZ세대에 대한 이슈들이 많아 이 세대를 설명하는 책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 실정인데, 그 중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재가 되었던 것은 ‘정시출근.. 2020. 12. 1.
정축년을 준비하는 후추 후추는 지금 정축년을 준비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후추는 “라사압소”거든요. 쉿~! 후추는 라사압소가 소인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라사압소가 강아지의 종류라는 건 비밀이에요! ※ 라사압소 : 시츄의 조상이 되는 견종으로 티벳에 주로 살아요. 얼마 전에 후추가 "내가 시고르 자브종이야?" 하고 묻길래, "아니, 너의 피에는 라사압소라는 티벳 고승의 정신이 흐르고 있어." 라고 알려줬죠. 그 때부터 였을까요, 후추는 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죠. 율무에게 간식을 뺏겨도 허허, 간식은 간식이고 물은 물이로다~ 그런데 후추가 내년이 정축년, 소의 해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나봐요. ※ 2021년은 정축년이 아니라 신축년이네요! 무단복제 및 수정을 금합니다. 구루퉁씨의 순수 창작물로 계속해서 그림을.. 2020. 11. 29.
Essay 007 : 미니카 학교 앞 문방구에 미니카 트랙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은 모두 문방구 앞에 모여있었다. 당시 미니카를 구하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었다. 돈을 주고 사는 방법과 뽑기를 통해 1등에 당첨되는 방법. 문방구 앞에 모여있는 아이들도 여러 부류로 나눠졌다. 엄마가 미니카를 사준 그룹과 용돈을 모아 산 그룹이 있고, 용돈을 모두 뽑기에 투자했다가 사탕만 잔뜩 가지고 있는 그룹과 미니카를 갖기 위해 별 노력을 하지 않는 그룹. 나는 마지막 그룹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미니카를 사는 것에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방영중이던 만화영화에서도 미니카가 등장해 가장 빠른 미니카는 아이들의 인기몰이를 했다. 아이들은 트랙 위에 자신의 미니카를 올려놓고 누가 더 빠른지, 그리고 360도 회전 트랙.. 2020. 11. 27.
Essay 006 : 악기 한 번씩 악기를 구매한다. 그 악기는 무슨 종류가 되었든 한 동안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가 금방 방구석으로 밀려나 버린다. 처음 악기를 접한 것은 멜로디언. 유치원에서 배웠다. 리코더, 단소, 소고, 멜로디언, 케스터너츠, 탬버린, 트라이엥글. 여기까지는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한 번쯤 다루어 보았을 악기. 중학생 때였나, 초등학생 때 였나? 반에서 합주를 한다고 했다. 역할을 어떻게 나누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알토 리코더를 샀다. 보통의 리코더 보다 커다랗고 멋들어져 보였다. 가격도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었다. 처음 알토 리코더를 보았을 때 그 크기에 모두들 나를 주목해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반짝이는 플롯을 들고 온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그 반짝임과 명랑한 소리에 넋을 잃었다. 주.. 2020. 11. 26.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2 : 너구리 우리 부부가 너구리를 처음 본 것은 처음 귀촌을 하러 내려온 봄. 당시 집 뒤편에 폐가가 하나 있었는데 옥상에 올라가 캄보디아에서 사온 해먹을 설치하던 우리는 폐가에서 너구리를 발견했다. 들개와는 확연히 다른 이미지. 눈두덩이가 거뭇거뭇하고 날렵해보이는 몸이 아니라 오동통통한 몸통을 가지고 있으며 꼬리가 허스키처럼 통통한 것이 국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고르자브종 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폐가는 길고양이들의 안식처인지라 매일 사료를 상납했었고, 우리집 강아지들 후추와 율무는 길고양이가 우리집 담벼락을 넘는지 안넘는지 옥상에 올라가 감시하고는 했다. 그곳 폐가의 마루 한켠에서 나타난 한국 너구리. 처음에는 저게 뭐지 싶었는데 곧 한국너구리라는 것을 깨닫았다. 한국인이라면 너구리라는 말에 라면이 떠.. 2020. 11. 25.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1 : 닭 ‘닭. 그것은 사랑이다.’ 이 문장에서 닭은 요리되어있는 상태를 말한다. 내가 시골에 내려온 이유 중에 하나가 후추와 율무의 복지였다. 마당있는 집. 목 줄 없이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을 제공하고 싶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집은 동물복지 계란을 사먹는다. 동물복지란, 자연방사란, 되도록 난각번호의 끝자리가 ‘4’가 아닌 계란을 구입하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생략한다. 죽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닭. 요즘 도시의 아이들이 닭을 처음 접하는 것은 백숙이나 후라이드 치킨이다. 살아 움직이는 닭이 아니라 요리가 된 닭을 가장 처음 접하게 된다. 시골에서는 마을마다 다르겠지만 마을에 한 두 집 정도는 닭을 키운다. 최근 들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어느 동네나 닭을 키.. 2020. 11. 24.
락스타 후추 강아지들과 산책하고 나면 강아지들이 몸에 붙여오는 것들이 있죠. 도깨비풀? 뾰족하고 따끔한 씨앗들을 붙여와요. 후추가 불러도 오지 않는데 갑자기 수풀에서 쫜!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온몸에 붙여온 씨앗들~ 마치 락스타 같아요. 자랑스럽게 우리 집 마당에 심을 잡초를 골라온 너란 녀석~ 사랑스럽고나 허허허~ 후추, 너의 이미지를 위해 단정한 사진들만 올려줄게~ 2020. 11. 23.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10 :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시리즈 에쎄이를 벌써 9개나 연재했다. 이쯤에서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 말고, 마주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시골에서 마주치지 않는 것 중에 가장 먼저 꼽고싶은 것이 있다. 도시인들을 지치게 만들는 바로 그것, 교통체증! 출퇴근 시간은 어째서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서울에 살 때는 어딜가든지 1시간은 걸렸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 해도 1시간을 잡는 것이 서울 교통의 정석. 빡빡한 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숨막히는 지옥철에 몸을 구겨넣는 것이 출퇴근! 가기 싫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던 나는 시골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 교통체증이 없다는 점을 꼽는다. 매우 .. 2020. 11. 20.
시골에서 마주치는 것들 009 : 다리가 잠기면 고립되는 마을 오늘은 비가 내린다. 간만에 시원하게 쏟아지니 기분이 좋…기는 개뿔, 양파 밭이 걱정된다. 외부수돗가에 수도꼭지가 고장나서 양갈래 수도꼭지로 교체하려고 주문을 해두었다. 그간 양파들은 목이 말랐을테지. 흙은 푸석해지고. 그래서 어제 비가 내리는 걸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장마철 비처럼 장대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양파밭에 볏짚으로 덮어줘서 굵은 비를 맞고 어린 양파가 쓰러지진 않을 것 같다. 으쓱, 나도 이제 시골 생활 4년차. 제법 양파밭 걱정도 할 줄 안다. 대부분 실제 농사꾼들은 하지 않는 걱정인데 내가 어설프다 보니 하는 걱정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들이 보면 양파밭 몇천 평 하는 줄 오해할 것 같은데, 마당 한 켠에 모종 한 판 정도 심어둔 것이 전부다. 올 해 ..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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