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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89

16 두 사람과 두 마리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6화 - 두 사람과 두 마리 행복할 시간은 아직도 충분하다 도시에서의 삶과 비교하자면 시골에 와서 우리는 제법 분주해졌다. 현관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이었던 서울과 달리 여기서는 현관문을 벗어나면 실내보다 더 넓은 ‘우리 집’이 펼쳐지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잔디가 자라면 깎아주는 일, 꽃과 나무에 물을 주는 일, 텃밭을 돌아보고 벌레를 잡아주는 일, 다리 많은 친구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방역을 해주는 일 - 그 밖에도 철마다 날마다 해주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날씨에 따라 그날의 일이 결정되는 것, 그것이 시골의 삶이었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우리 못지않게 바빠진 것은 강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2023. 1. 24.
15 길을 깔아보셨나요?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5화 - 길을 깔아보셨나요? 내가 까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꽤 자주, 남편의 넋이 나가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말을 걸어도, 어깨를 주물러줘도 어딘지 모르게 멍한 상태가 길게 이어지면 슬그머니 불안한 마음이 든다. '분명 머릿속으로 뭔가 생각하는 거야.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지?' 아침을 먹고 두 사람의 시선이 나란히 마당으로 향해있던 어느 날 - 길을 깔자, 고 남편이 말했다. 산책을 가자, 거나 빨래를 널자, 는 말처럼 아무렇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좋지, 하고 대답할 뻔했다. 길을 깔자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길이 필요할 만큼 땅이 험한 것도 아니고, 길이 없어서 불편한 것도 아닌데. 말없이 마당과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는 내게 남편은 대문에서부터 우리 집 현.. 2023. 1. 23.
14 상추를 다듬는 시간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4화 - 상추를 다듬는 시간 상추대란 그러니까 이런 상황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씨만 뿌려두고 간간이 살펴 물을 주는 일 외에는 거의 돌보지 않은 상추가 이렇게나 잘 자랄 줄이야. 할머니께서 한 이랑 가득 상추 씨앗을 뿌려주실 때만 해도 ‘아, 저렇게 씨를 잔뜩 뿌려주시는 걸 보니 발아율이 높지 않은가보구나’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상추의 자생력은 대단했다. 어느 날부터 잡초들 틈으로 상추 싹이 조금씩 올라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파릇파릇 자라나 이랑을 뒤덮기 시작했다. 단언컨대 잡초급의 성장 속도였다. 생각보다 무서운 기세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기는 했지만 애초에 먹으려고 심은 씨앗이니 싹이 잘 자라 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작업용 장갑.. 2023. 1. 21.
13 끼니,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3화 - 끼니,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종속영양 생물의 숙명을 넘어 말하자면 나는 ‘종속영양 생물’이다. 혼자 힘으로 유기물질을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유기물질을 섭취하는 생물. 그렇기에 스스로 유기물질을 합성하는 식물과 달리 종속영양 생물에 속하는 나는 돌아오는 끼니를 맞아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먹지 않으면 죽는, 이 지구 상의 모든 동물과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잊지 않고 꾸준히 외부로부터 영양을 섭취해왔기 때문이다. 꿈이 있기 때문, 이라거나 내 몫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배가 고팠으므로 먹었고, 먹었으므로 살았고, 살았으니 기왕이면 행복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내가 살.. 2023. 1. 20.
12 지금은 농사 중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2화 - 지금은 농사 중 마음만은 벌써 풍년 빈 땅이 여백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상추 싹이 채 올라오기도 전이었다. 무언가를 심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뿌듯해진 나는 아무것도 심지 않은 빈 텃밭을 보며 저 광활한(?) 땅에 무엇이든 심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이라도 허투루 놀리지 않는 이웃들을 보며 이곳의 삶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던 우리가 이렇게나 빨리 텃밭농사에 뛰어들게 될 줄이야, 정말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2일/7일마다 열리는 황간면의 장이나 4일/9일에 열리는 영동군 장에 가서 그 계절에 심기 알맞은 씨앗이나 모종을 구했다. 포트마다 붙은 이름을 보고 우리가 먹고 싶은 채소, 종종 쓰지만 잘 사지는 않는 채소를 위주로 모종을 고른 .. 2023. 1. 19.
11 산책이라고 함은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1화 - 산책이라고 함은 Feat.가을방학 시골에 온 지 한 달 남짓, 공간도 삶도 자연스레 정돈이 됐다. 대문 옆 벽에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문패 세 개를 달고, 마당에 빨랫줄을 치고, 못 쓰는 나무판과 플라스틱 박스를 이용해서 옥상에 앉을자리를 만들면서 우리가 꿈꾸던 모습의 집으로 꾸며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동안 정해진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옥상에 올라가 마을 풍경을 보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마시고 싶은 차를 마시며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놓아두었더니 그 안에서 나름의 규칙들이 생겨나 일상을 자아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알람 삼아 일어나 집 안의 문을 모두 열어둔 채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는 일. 강아지들이 마당과 집 안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아.. 2023. 1. 18.
10 '농.알.못' 부부의 농사 첫걸음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10화 - '농.알.못' 부부의 농사 첫걸음 Feat.황간면 농사 마스터, 옆집 할머니 밭에 뭔가를 심으려면 잡초를 뽑아야 하니 뽑기는 했다만 사실 우리는 텃밭 가꾸기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내내 도시에서 살며 시골과는 인연이 없었던 터라 우리가 아는 것은 그냥 흙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면 무언가 자란다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뿐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책을 읽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농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기후와 날씨, 토양이었다. 작물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어도 무엇이 잘 자라는지, 언제쯤 심고 거두어야 하는지는 농사를 짓고자 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달랐다. 일단 마을 사람들이 어떤 작물을 심었는지 궁금해 집을 .. 2023. 1. 17.
09 멀리서 보면 잡초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9화 - 멀리서 보면 잡초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풀 앉은 자리마다 삶이었다 우리의 텃밭 정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쓰지 않던 몸을 쓰느라 삭신은 여전히 쑤셨지만 며칠간 짬짬이 풀을 뽑다 보니 텃밭을 뒤덮은 잡초들의 생김새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텃밭을 채운 풀들은 생김새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졌다. 잎이 길고 납작한 풀이 있는가 하면, 잎이 동그랗고 넓은 풀도 있고, 하트 모양의 잎이 여러 개 더해진 모양의 풀도 있었다. 이 세 가지 모양의 풀이 우리 텃밭에 가장 많았다. 잡초라는 이름으로 모두 다 한통속 같았던 풀들을 어느 순간 조금씩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잡초라는 것은 다만 멀리서 본 우리의 시선일 뿐, 여기 이 흙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풀들과는 전혀.. 2023. 1. 16.
08 다리 많은 친구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8화 - 다리 많은 친구들 다리 다섯 이상 출입금지 시골에서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 없이 햇살이 방 안으로 들면 하루를 시작해 장을 봐온 재료들로 간단히 점심을 해 먹고 짐을 풀다가, 벚꽃을 보러 갔다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꿔보려고 틈틈이 밭에 잡초도 뽑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서 텃밭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기본적인 농기구 몇 개를 갖추고 무작정 잡초를 뽑았는데 농사일에 요령이 없는 우리는 호미, 낫, 네기, 삽 등 각종 기구를 이용해 온갖 퍼포먼스를 벌였다. 쪼그려 앉아 호미나 낫으로 잡초를 베어내다보면 금세 손목이 아파왔고, 삽으로 땅을 퍼내다 보면 발목이 시큰거렸다. 빗.. 2023. 1. 14.
07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7화 -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서울로부터 208.15km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보다 벚꽃이 우선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봄이면 열일 제쳐두고 벚꽃부터 봐야 직성이 풀렸다. 대학 시절, ‘중간고사’라는 웃지 못할 꽃말에도 벚꽃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하면 했지, 그러지 않고서야 마음이 들떠 좀처럼 앉아있지 못하는 나였다. 4월을 맞기 위해 한 해를 사는 사람처럼 봄을 기다리는 것이 내게는 낙이었다. 짐 정리는 잠시 밀어 두고 꽃놀이를 나섰다.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벚꽃 때문에 4월을 손꼽아 기다린 나를 아는 남편과 강아지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봄빛 완연한 계절, 골목 구석구석 봄이 흠씬 번지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초입 나무에도 벚꽃이.. 2023. 1. 13.
06 잘 있어, 서울!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6화 - 잘 있어, 서울! 숱하게 많은 낮들과 수없이 지샜던 밤들이 이곳에 있었다. 시골집의 주소를 날씨 앱에 등록해두고 그곳의 햇살, 바람, 비를 상상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나라는 사람이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곳에서보다 조금 덜 조급한 나이기를, 이곳에서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나이기를 바라며 봄비가 한창일 그곳을 떠올렸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새삼스레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 곳곳을 쏘다녔다. 언제 한 번 보자는 말로 미뤄둔 약속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털어낼 수 있게 되어 마음도 한결 가뿐했다. 결혼 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산 기간보다 더 오래 서울을 떠난다는 .. 2023. 1. 12.
05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5화 -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나는 내내 여기가 아닌 곳들을 기웃거렸다. 옮겨가기로 결심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중 한 가지는 우리 집을 채우고 있는 이 많은 물건들을 결코 시골집에 다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사 날짜를 정하고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계약 후 한 차례 더 내려가 집을 실측하고 나니 비로소 가져갈 물건을 추려야 하는 현실이 보였다. 마당이나 옥상 공간까지 생각하면 지금 사는 집에 비해 공간이 넓었지만, 실내 공간만 따져보면 지금 사는 집에서 방 한 칸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이사 업체 몇 군데서 견적을 내보니 트럭 한 대에 짐이 간신히 다 들어가거나 경우에 따라 한두 가지 가구..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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