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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의 기록89

40 결국 모두 시간이 해결할 문제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40화 - 결국 모두 시간이 해결할 문제 다시, 봄 겨우내 얼었다 풀린 땅을 뚫고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미는 건 잡초. 추위가 물러가기 무섭게 자라는 잡초를 뽑고 이랑을 뒤엎으며 한바탕 흙을 섞었다. 뿌린 뒤 바로 작물을 심어도 되는 완숙퇴비(완숙퇴비 말고는 반숙퇴비가 있는데, 반숙퇴비는 숙성이 덜 된 상태이기 때문에 뿌린 뒤 작물을 바로 심을 수 없다.)를 뿌려주었다. 텃밭을 뒤덮은 흰 눈이 녹자 비로소 작년 가을에 심어둔 양파가 빼꼼히 싹을 올린 것이 보였다. 양파는 10~11월쯤 모종을 심은 뒤 해를 넘겨 다음 해 4~5월쯤 수확하는, 생육기간이 비교적 긴 작물이다. 양파를 언제 심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가 장에서 모종을 보고 부랴부랴 심어서 제대로 뿌리를 내린 것이 많지.. 2023. 2. 22.
39 겨울의 끝자락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9화 - 겨울의 끝자락 마지막이 되면 처음을 생각한다 한국에 도착했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풍경. 이 나라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만 이곳이 그리울까. 이런저런 생각도 잠시,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집에 들러 차를 몰고 강아지들을 데려왔다. 그 사이 강아지들은 털이 북슬북슬해져 있었다. 새삼 시간이 흘렀다는 걸 실감했다. 우리가 언젠가 올 줄 알았다는 듯 격렬하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들과 함께 네 식구가 집에 도착했다. 담장 너머엔 태국에서 주문한 택배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박스에서 하얀색 등유난로를 꺼냈다. 한파는 한풀 꺾였지만 아직 남은 한국의 겨울을 그 집에서 무방비하게 맞을 수 없다는 남편의 판단 아래 철저히 태국에서 이뤄진 쇼.. 2023. 2. 21.
38 겨울유희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8화 - 겨울유희 소나무, 호수 그리고 별 집이나 밖이나 추운 건 매한가지. 그렇다면 나가서 바람이라도 실컷 쐬자. 그동안 리스트에 올려두었던 곳에 가보기로 했다. 첫 번째는 영동에서 나름 유명한 송호관광지. ‘송호’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소나무와 호수가 있는 곳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관광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름 한철, 장사를 했을 것 같은 포장마차와 캠핑장만 그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조금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지만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우리는 이곳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었다. 솔잎이며 솔방울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키 큰 소나무가 꽤 많았는데, 걸음을 옮기자 울창한 소나무 사이사이로 햇빛이 새어들었다. .. 2023. 2. 20.
37 차의 시간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7화 - 차의 시간 차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 교복 입던 시절, 내게 커피란 500짜리 레쓰비 혹은 700원짜리 조지아 커피였다. 적당히 달달하면서 씁쓸한 맛, 커피는 다 그런 줄 알았다. 대학 시절에 빵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라는 걸 마셨다. 물을 가득 채운 컵에 에스프레소 샷을 넣은 아메리카노는 다들 왜 그렇게 찾아먹는지 모를 만큼 썼다. 아메리카노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스무 살, 그로부터 6년 후의 나는 카페인을 연료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달라진 것은 카페인의 범위가 커피에서 홍차로까지 넓어졌다는 것뿐. 도시에서는 주로 커피를 사서 마셨다면 시골에 와서는 아무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 가정용 에.. 2023. 2. 18.
36 동백이 피기까지는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6화 - 동백이 피기까지는 다 나쁠 수 없는 것 겨울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세상이 계속 추워질 것 같았다. 지구 전체가 빙하와 바다로 뒤덮이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된다면 펭귄을 만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역시 인생에는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금 모든 것이 다 나쁜 것 같은 상황에 처한 우리에게도 뭔가 좋은 것이 있는 걸까? 다 나쁠 수 없는 거라면, 뭐 하나라도 좋아야 할 텐데. 집안을 두리번거리며 겨울의 좋은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귤과 만화책은 이미 기본 옵션. 눈 덮인 풍경을 실내에서 보는 일도 퍽 운치 있고 티 워머로 데운 홍차를 마시는 시간도 좋다. 강아지들과 눈길을 산책하는 것도 겨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2023. 2. 17.
35 달아나 숨거나 끝없이 견디거나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5화 - 달아나 숨거나 끝없이 견디거나 여긴 춥다, 너무 춥다(Feat.에픽하이)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지다 문득 조금 덜 추워졌다 했더니 눈이 내렸다. 눈은 내릴 때는 세상을 조금 더 포근하게 해주었지만 다 내리고 난 다음에는 전보다 더 차가운 겨울을 돌려줬다. 며칠 안에 혹한이 몰려올 것 같았다. 제일 신난 건 역시 강아지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눈이 조금 쌓이자 신나게 달려가 새하얀 눈에 첫 번째로 발자국을 찍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우리가 무척 잘 지내고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진지하게 이사를 고려할 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나는 매일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남편은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 헤맸다. 이 모든 것이 겨울 때문이라는 생각.. 2023. 2. 16.
34 이제, 겨울 - 하지만 봄은 오니까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4화 - 이제, 겨울 - 하지만 봄은 오니 고양이도 겨울준비 보일러 기름을 넉넉히 채우고 겨울 이불을 꺼냈다. 패딩도 언제든 입을 수 있게 세탁소 비닐을 빼고 걸어두었으니 사람의 겨울 준비는 거의 끝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길 위의 고양이들. 요즘 고양이들은 한낮이 되면 우리 집 뒤편 폐가 쪽 풀숲에 가서 볕을 쬐었다. 새끼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놀았던 유년의 뜰에서 삼색이는 오래도록 평안해 보였다. 고양이들이 걱정이었다. 올해 겨울도 무척 추울 거라는 보도가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많은 길고양이들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넌단다. 삼색이와 턱시도는 겨울을 알겠지만, 새끼들에게는 이번 겨울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마냥 천진하게 잠든 새끼들을 보.. 2023. 2. 15.
33 수리부엉이는 호우호우 운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3화 - 수리부엉이는 호우호우 운다 Winter is coming 간밤에 호우 호우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소리였다. 새소리 같기도 하고 다른 산짐승 소리 같기도 했다. 뭘까 뭘까 하는 동안에도 계속 호우 호우 들려와서 스마트폰에 손을 뻗었다. 몇 번의 검색 끝에 호우 호우 우는 새는 수리부엉이라는 걸 알았다. 날이 추워지면 울기 시작하고, 겨울밤 대나무 숲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수리부엉이. 텃밭 뒤편으로 제법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는데 거기서 우는 모양이었다. 고요한 새벽녘,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호우 호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부엉이 소리를 다 들어본다며 남편과 나직이 웃었다. 수리부엉이는 겨울을 알리는 전령사구나, 그렇게 속삭이면서. .. 2023. 2. 14.
32 가을엔 겨울준비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2화 - 가을엔 겨울준비 에어캡 대신 동백꽃 감이 말라가듯이 가을도 깊어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그 아래 노란 단풍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아쉬웠다. 가을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이 그렇게 좋다가도 못내 쓸쓸했다. 그래도 바람이 쏴아아- 불어올 때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이 예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과 마당을 오가는 나였다. 유난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집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가을은 여행하기에도 좋은 계절이어서 대전으로 대구로, 가끔은 서울을 오갔다. 도시는 분주하고 초조해서 늘 나를 설레게 했지만 도시에 갔다 돌아오면 이곳의 한적함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나는 끝끝내 돌아갈 곳이 있어야 .. 2023. 2. 13.
31 감을 말려요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1화 - 감을 말려요 결국 나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안 할 줄 알았다. 길을 걸으며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매달아 놓은 감을 볼 때에도, 장날 시내에서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가게마다 곶감 걸이며 필러(감자 깎는 칼)를 팔고 있는 풍경을 볼 때에도 나는, 나만은 감을 깎는 일이 없으리라 믿었다. 감을 깎고 말려 먹을 만큼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주위에서 대봉이며 단감을 종종 나눠주시니 있는 감을 먹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감을 하나하나 깎아서 썰어서 말려서……. 겨우 말린 감을 먹자고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연일 감으로 축제를 벌이는 듯한 마을 분위기에 굴하지 않고 감을 깎지 않겠노라, 매달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 2023. 2. 11.
30 여기는 감고을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30화 - 여기는 감고을 감 떨어지는 계절 언제부터인가 퉁! 퉁! 하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퉁, 퉁 할 때마다 우리 집 강아지들이 왈왈 짖는 소리가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담 앞까지 걸어가서 어디서 소리가 나는 걸까, 살펴보았다. 강아지들이 쭐래쭐래 따라와 왈왈 짖었다. 소리의 정체는 감. 나무에서 떨어진 감이 슬레이트 지붕과 부딪히면서 퉁, 퉁 소리가 난 것이었다. 영동군은 '감고을'이라는 수식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감나무가 많은 곳이다. 처음 영동군에 왔을 때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있는 잎이 반질반질한 나무가 뭘까 싶었는데 가을이 되어서야 그 나무들이 모두 감나무라는 사실을 알았다. 가로수가 모두 감나무라니, 정말 컬처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감.. 2023. 2. 10.
29 갈림길의 오른편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29화 - 갈림길의 오른편 가을을 걷다 시골로 오면서 단출해진 것은 살림살이나 내 삶의 우선순위뿐만이 아니었다. 삶의 터전을 시골로 옮겨오며 그간 내가 알아왔던 사람들도 한 차례 정리가 됐다. 특별히 사이가 나빴다거나 의도적으로 인간관계를 단절하지 않아도 시골에서는 꼭 필요한 인간관계만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이 가까이 있다지만 서울까지는 무궁화호로 3시간 남짓. 모든 사람을 만나러 서울에 수시로 갈 수는 없어서 꼭 필요한 일로만 서울을 오가다 보니 내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나서' 보는 사람들과 '시간을 내서' 보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나서'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시간을 내서' 나를 보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이.. 2023.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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