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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다리 많은 친구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8화 - 다리 많은 친구들 다리 다섯 이상 출입금지 시골에서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는 새로움의 연속이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 없이 햇살이 방 안으로 들면 하루를 시작해 장을 봐온 재료들로 간단히 점심을 해 먹고 짐을 풀다가, 벚꽃을 보러 갔다가,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텃밭을 조금이라도 가꿔보려고 틈틈이 밭에 잡초도 뽑았다. 전에 살던 사람이 농사를 짓지 않아서 텃밭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기본적인 농기구 몇 개를 갖추고 무작정 잡초를 뽑았는데 농사일에 요령이 없는 우리는 호미, 낫, 네기, 삽 등 각종 기구를 이용해 온갖 퍼포먼스를 벌였다. 쪼그려 앉아 호미나 낫으로 잡초를 베어내다보면 금세 손목이 아파왔고, 삽으로 땅을 퍼내다 보면 발목이 시큰거렸다. 빗.. 2023. 1. 14.
07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7화 -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쩌면 서울로부터 208.15km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보다 벚꽃이 우선이었다.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봄이면 열일 제쳐두고 벚꽃부터 봐야 직성이 풀렸다. 대학 시절, ‘중간고사’라는 웃지 못할 꽃말에도 벚꽃나무 아래에서 공부를 하면 했지, 그러지 않고서야 마음이 들떠 좀처럼 앉아있지 못하는 나였다. 4월을 맞기 위해 한 해를 사는 사람처럼 봄을 기다리는 것이 내게는 낙이었다. 짐 정리는 잠시 밀어 두고 꽃놀이를 나섰다.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벚꽃 때문에 4월을 손꼽아 기다린 나를 아는 남편과 강아지를 앞세워 집을 나섰다. 봄빛 완연한 계절, 골목 구석구석 봄이 흠씬 번지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 초입 나무에도 벚꽃이.. 2023. 1. 13.
06 잘 있어, 서울!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6화 - 잘 있어, 서울! 숱하게 많은 낮들과 수없이 지샜던 밤들이 이곳에 있었다. 시골집의 주소를 날씨 앱에 등록해두고 그곳의 햇살, 바람, 비를 상상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사는 곳이 바뀐다고 나라는 사람이 당장 바뀌지는 않겠지만 이곳에서보다 조금 덜 조급한 나이기를, 이곳에서보다 조금 더 너그러운 나이기를 바라며 봄비가 한창일 그곳을 떠올렸다. 떠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새삼스레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 곳곳을 쏘다녔다. 언제 한 번 보자는 말로 미뤄둔 약속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털어낼 수 있게 되어 마음도 한결 가뿐했다. 결혼 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산 기간보다 더 오래 서울을 떠난다는 .. 2023. 1. 12.
05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5화 - 마지막을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나는 내내 여기가 아닌 곳들을 기웃거렸다. 옮겨가기로 결심하니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중 한 가지는 우리 집을 채우고 있는 이 많은 물건들을 결코 시골집에 다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사 날짜를 정하고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계약 후 한 차례 더 내려가 집을 실측하고 나니 비로소 가져갈 물건을 추려야 하는 현실이 보였다. 마당이나 옥상 공간까지 생각하면 지금 사는 집에 비해 공간이 넓었지만, 실내 공간만 따져보면 지금 사는 집에서 방 한 칸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이사 업체 몇 군데서 견적을 내보니 트럭 한 대에 짐이 간신히 다 들어가거나 경우에 따라 한두 가지 가구.. 2023. 1. 11.
04 그 집 이야기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4화 - 그 집 이야기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집주인이 서울에 살고 있어서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부동산에서 등기로 계약서를 받고 집주인과 만나 작성한 뒤 다시 부동산으로 보내기로 했다. 부동산 계약 절차가 으레 그러하듯 서로 사무적인 태도를 취하며 꼭 필요한 대화만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상상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집주인은 이 집이 흘러온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이 집의 주인이 된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됐다. 집주인이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그곳에는 아들을 서울에, 딸을 부산에 둔 한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 2023. 1. 10.
03 일단 가는 거야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3화 - 일단 가는거야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몇 날 며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밤낮으로 시골살이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었고 시골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다. 소시지처럼 줄줄이 엮인 생각을 툭, 잘라낸 건 남편의 한 마디였다. “일단 가보자. 가서 문제가 생기면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 단호한 한 마디. 남편의 이 한 마디에 그 날이 겹쳐 떠올랐다. 우리가 아직 연인이었던 어느 날, 남편은 내게 결혼하자고 말한 그 날. 남편은 ‘저녁으로 치킨을 먹자’라고 할 때처럼 덤덤한 목소리로 결혼하자고 말했다. 너무도 태연해서, 나는 내가 잘못 들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꽃 모양의 자그마한, 풀 .. 2023. 1. 9.
02 현실과 이상 사이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2화 - 현실과 이상 사이 도로가 막히지 않는 시간을 틈타 길을 떠났다. 밤새 걱정을 사서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감았다 뜨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가 들렸다. 서울에서 3시간 30분.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이 사나, 싶을 만큼 한적한 마을에 초입에 차를 세웠다. 골목이 좁아서 이쯤에 주차를 하고 집 앞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큰길 옆으로 난 작은 샛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길을 따라 집 몇 채가 줄지어 나타났다. 여전히 길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집집이 내건 문패를 보며 사람이 사는 곳이로구나, 알 수 있었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이 집인 것 같다며 남편이 손짓을 했다. 나지막한 담과 짙.. 2023. 1. 7.
01 어느날 갑자기 내 마음이 말했다 뜰의 기록 : 어쩌다 시골살이 01화 - 어느날 갑자기 내마음이 말했다 '더 이상 안 되겠어.' 목까지 차올랐던 말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은 경기도에서 4년, 서울에서 3년을 살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재택근무자로 막 사회생활의 첫 걸음을 뗀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오랜 시간 집을 떠나 기숙사와 원룸, 자취촌을 전전하던 나는 대학교에서 만나 5년간 교제한 연인과 2016년 4월 결혼식을 올리고 동작구의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이 탁 트인 한강을 가로지를 때마다 내가 정말 서울에 왔구나, 감동했던 것도 다 지난 일. 어느 새 나는 만원버스에 몸을 싣고 창밖으로 보이는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을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서울생활을 동경해 여기까지 왔지만.. 2023. 1. 6.
IF014 : 해리 현상 쉽게 이해하기 해리 현상 심리학 관련 책을 읽다보면 해리성장애, 해리 현상, 해리성 기억상실증 등 해리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해리’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보니 처음에는 좀 낯설어 선뜻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해리라는 단어를 조금 집고 넘어가보려고 한다. 해리는 프랑스의 신경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자네(P.Janet)가 발달시킨 개념이다. 영어로는 ‘dissociation’으로 분리(작용, 상태), 분열(의식, 인격)을 뜻한다. 화학에서도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고통을 의식에서 배제시키기 위해 인격을 분할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해리 현상이라고 한다. -1870, Pierre Janet 우리나라에서 해리는 한자어다. 그러니 한자 .. 2023. 1. 3.
질문의책Q4 -나를 찾아가는 질문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4.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관절염을 완치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복용한 사람의 1%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약을 시판하는 것을 찬성합니까? 약이 출시되려면 우리는 임상시험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절차를 간략히 확인해 보자면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여 비임상시험 후 임상시험계획을 제출한다. 임상은 1상, 2상, 3상 임상시험을 거쳐 신약승인신청을 제출하여 허가당국(식약처, FDA 등)의 승인을 받은 뒤 시판을 하게 된다. 정식 승인 하에선 사전에 고지 되지 않은 포괄적인 부작용에 대해 제약사가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원칙이다. 잠시 상식으로 알고 넘어갈 부분은 임상시험과 생동성시험은 다른 시험이다. 임상은 쉽게 말해.. 2023. 1. 2.
질문의책Q3 -나를 찾아가는 질문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3. 당신은 앞으로 일 년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일 년 뒤에 그토록 행복했던 일 년간의 시간을 전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일 년간의 행복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까? 만약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억이 없다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를 기억하고 이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나는 존재하게 된다. 기억이 없다면 과거가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고 현재를 인식한다면 나는 갑자기 존재하게 된다.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나에 이르렀듯이 나의 기억이 보존되지 못하고 경험을 회상할 수 없다면, 일 년간의 행복이 내가 될 수 없으므로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것은 의식의 영역이다. 그런데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기억,.. 2022. 12. 30.
질문의책Q2 -나를 찾아가는 질문 그레고리 스톡의 질문의 책 Q2. 당신은 오늘 밤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이 죽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 꼭 했어야만 했는데 미처 하지 못해서 참으로 후회스럽기 짝이 없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왜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까? 부치지 못한 편지, 걸지 못한 전화, 그런 느낌의 이야기일까? 자기 고백이라거나 숨겨온 진실들. 그런 것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어깨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눈빛, 목소리는. 대학시절 문예창작학과 소설 강의 중엔 콤플렉스를 써오는 강의가 있었다. 나의 콤플렉스를 강의실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 선후배들 앞에서 읽어야 했다. 대부분 읽다가 훌쩍거리고는 했다. 떨리는 목.. 202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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